정색하고 하는 말

김장수 씨를 보며 매너를 생각한다

몽당연필62 2008. 3. 17. 10:03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장수 씨가 16일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조건은 오는 4월 9일 치러질 총선의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배정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최근 국민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김 전 장관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허리를 굽히지 않아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고(소신), 게다가 전세를 살고 있다고 하여 이미지가 매우 좋은(청렴) 사람이다. 한나라당은 대어를 낚아 희희낙락일 터이고, 그를 영입하고자 했던 통합민주당은 뒤통수를 맞은 형국이겠다.

 

전직 고위 관료가 정계에 진출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유능하고 소신이 있으며 청렴하기까지 한 사람이 그 경륜을 썩히지 않고 정치인이 되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김장수 씨의 한나라당 입당 소식은 흔쾌하기는커녕 마음을 아프게 찔러온다. 마치 민주화의 화신처럼 여겨졌던 김영삼 씨가 군부 쿠데타 세력들과 3당합당을 할 때와 같은 충격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알려지기로는 자신의 명운을 참여정부와 함께할 것처럼 이야기했던 그가 아니던가.

 

김장수 씨의 한나라당 입당과 비례대표 출마가 법적으로 문제될 일은 아니다. 그 나름의 정치적 소신이 있었다면 이 또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법과 소신으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정서'나 '매너'가 법이나 소신 이상의 질서를 구축하고 감동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지난 주 내내 '코드 인사'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코드 인사를 그토록 혐오하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었으니 과거 정권 때 임명된 기관장들은 물러나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참여정부 사람으로서 가장 좋은 이미지를 간직했던 김장수 씨가 한나라당의 품에 안겼다.

 

김장수 씨는 자존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불타는 철새 본능을 훌륭한 포장지로 감춰왔던 것인가. 통합민주당을 기웃거리다가 방향을 틀어 자신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정당에 입당하다니! 그가 정치를 하거나 말거나 우리 국민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게 뭐 있으랴만, 그의 한나라당 입당은 그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킨 매너 없는 짓임에 틀림 없다.

 

매너는 사소한 것이지만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기도 하다. 야구경기에서도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 팀은 번트나 도루를 자제하는 것이 매너다. 매너가 없으면 관중들의 야유를 받게 마련이다. 지금 인터넷에는 매너를 저버린 김장수 씨에 대한 야유 소리가 요란하다. 그 동안 보냈던 존경과 사랑을 접는 소리들도 함께.

 

아무튼 한동안 정치 관련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글을 쓰는 것을 보면 내가 김장수 씨를 멋있는 남자라 생각하며 많이 좋아했던 모양이다. 하긴 기대가 크면 실망 역시 큰 법, 존경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도 원래 추상적이고 허무한 것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