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나는 오뤤지보다 오렌지가 좋다

몽당연필62 2008. 1. 31. 10:10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영어 표기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인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어렵다"면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도 내용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예로 미국에서 orange를 '오렌지'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들었으며 '오뤤지'라고 하자 알아듣더라고 밝혔다.

 

영어 교육 강화 문제가 뜻밖에도 국어 교육 강화로 확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래어의 한글 표기는 우리 국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말을 본디의 발음에 맞게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 표기에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거나, 규칙을 정해서 통일적으로 시행하기가 어렵거나, 언어생활에 오히려 불편이 초래된다면 또 하나의 혼란만 초래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데 블로거 '한글로' 님이 지적하셨듯이(http://media.hangulo.net/347) 이경숙 위원장은 외국어와 외래어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예로 든 오렌지를 비롯해 우리가 한글로 표기하는 많은 외국의 말들은 사실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우리 국민 사이에 통용되는 우리말로서의 외래어인 것이다.

 

외래어에는 아웃, 홈런, 파울, 라디오, 텔레비전, 팩스, 택시, 버스, 컴퓨터, 카테고리, 블로그, 미디어, 인터넷... 따위의 영어권 외래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성명, 국가, 자존심, 영어, 몰입, 전기, 기차, 승용차, 비행기, 방문, 기자... 등 한자어권 외래어도 있다. 심지어는 '팀장(team長)'처럼 영어와 한자가 합쳐진 외래어도 있다. 쓰나미와 스도쿠는 일본에서 들어온 외래어로 안다.

 

아무리 우리 한글이 우수한 표음문자라고는 하나, 이 외래어를 소리 그대로 표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필자의 견해는 '불가능'이며 '불필요'이다. '컴퓨터'를 '컴퓨러'로 쓸 것이 아니라, 대신 발음기호를 정확하게 가르쳐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외래어를 본디의 소리에 최대한 가깝게 적어야겠다면(물론 이러한 노력은 필요하다) 앞에 예를 든 한자어권 외래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이미 외래어라는 느낌마저 사라져버린 '빵'이나 '담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외래어는 결코 외국어가 아니다. 그러니 일정한 표기의 기준은 갖추되, 그냥 우리가 발음하기 쉬운 대로 썼으면 좋겠다. 그도 아니면 북한이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바꿔 말하는 것처럼 외국에서 새로운 말이 도입될 때부터 아예 우리말로 바꿔버리든가 말이다.

 

인수위원회는 어떻게 하면 외국 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차라리 현재 표준말로 되어 있는 '자장면'을 서둘러 '짜장면'으로 바꿔달라. 또 '에헤' 다르고 '애해' 다르다고 하는데, '애국애족'과 '에국에족'의 차이를 규명하고, 발음에 차이가 없다면 ㅐ나 ㅔ 하나로 통합하는 문제를 고민해보라.

 

덤으로 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에게 숙제를 내니, 잘 풀어보시기 바란다.

 

문제 1) 어머니의 친정을 일컫는 말의 발음으로 바른 것을 고르시오.

보기) 1. 외가     2. 왜가     3. 웨가

 

문제 2) 최근 외래어 발음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과일의 옳은 발음은?

보기) 1. 오뢴지     2. 오렌지     3. 오뤤지     4. 오랜지     5. 오린지     6. 오렌쥐     7. 오랜쥐     8. 오뢴쥐     9. 오륀쥐    10. 오린쥐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