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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거짓말, 이번 명절엔 내려오지 마라

몽당연필62 2008. 2. 4. 11:42

큰애가 태어난 해이니 1990년의 일이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시골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애가 아직 백일도 지나지 않았으니 이번 명절에는 내려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호남선의 끝인 목포까지 가서도 한 시간 가까이 더 가야하는 머나먼 고향길만 생각하면 멀쩡하던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라 잘됐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 아니라도 부모님 찾아뵐 형제가 많으니 쉬는 동안 잠이나 소문나게 실컷 잘 궁리를 거듭하며 연휴 직전 어머니께 명절 잘 쇠시라고 전화를 드렸더니 서운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야, 너 참말로 안 올래?”


어머니의 한마디에 바늘에 찔린 듯 화들짝 놀란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귀성길에 오르게 되었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 기차표도 고속버스표도 구할 수 없어 관광버스를 타야 했다. 태어난 지 겨우 두 달이 지난 어린 것을 안고 시달려야 했던 열다섯 시간의 귀성길은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 후로도 명절 때마다 어머니는 아들네의 힘든 귀성을 걱정하셨다.

“아직 애기가 어린데….”

“둘이나 데리고 힘들어서 어떻게….”

“IMF인데 뭐하려고 돈 들여서….”

이처럼 어머니는 늘 고생스럽게 먼 길 내려오지 말고 그냥 서울에 편히 있으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그것이 당신의 진심이 아님을 알기에 결코 두 번 속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있다.


좋게 말하면 낙천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을러터진 것이 천성인지라, 나는 명절 차표를 예매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차례를 고향에서 지내보지 못한 적 또한 없다. 다른 집은 혼잡한 교통을 피하고 자식들의 부담도 덜어줄 겸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는 역귀성을 한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도 않으셨다.


나는 명절 연휴가 시작되면 으레 짐을 꾸리고 문단속을 한다. 그리고 버스로, 기차로, 운이 좋으면 비행기로 고향을 찾았고, 차를 가진 요즘은 열 시간쯤은 기본으로 잡고 운전을 한다. 귀향본능이다.


그래도 찾아갈 고향이 있어 행복하다. 비록 땅바닥에 온 하루를 쏟아붓더라도 찾아가 뵐 부모님이 계셔서 더욱 행복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두 딸에게 따뜻한 풍속과 싱그러운 자연이 있는 아빠와 엄마의 고향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설날 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전화를 하셨다.

“너희들 내려오기 힘들 것인데, 이참에는 우리가 올라가랴?”

한마디로 ‘보고 싶다’ 하시면 될 것을, 어머니의 어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


자식을 키우면서 나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명절이라고 자식이 멀리서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내려와도 걱정이고, 다섯 남매 중 하나만 안 보여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어머니의 마음을. 차례 지내면 차 막히기 전에 출발하라고 등 떠밀면서도, 막상 짐 챙겨 일어서면 한없이 아쉽고 서운하기만 한 부모님의 마음을….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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