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복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몽당연필62 2007. 12. 31. 08:58

복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졸필난필 잡문신문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나누실 터인데, 복이 느껴지시나요? 정말 복이 뭐죠? 형체가 있던가요? 냄새는 나는지요? 색깔은요? 사실 복의 실체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복을 빌고, 다른 사람의 복을 축원합니다. 혹시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가 없는 새해나 설날을 상상해 보셨는지요?

 

'복'이라는 딱 한 마디 말 속에는 건강, 재물, 다산, 승진, 풍년 등 온갖 기쁘고 아름다운 의미들이

버무려져 있다(사진 제공 : 최수연/월간 '전원생활' 기자).

 

어렸을 때, 손바닥을 비비며 중얼중얼 뭔가를 비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장독대에서도, 부엌에서도, 당산나무 아래서도, 굿판에서도, 그렇게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아기가 들어서지 않는 며느리에게 자식 하나 점지해달라고, 군대에 간 작은아들이 무사히 제대하게 해달라고, 아픈 손자손녀가 어서 낫게 해달라고 빌었겠지요.

외할머니가 빈 것은 하나하나 내용이 다를지라도, 뭉뚱그려 말하면 ‘복’이었을 것입니다. 외할머니의 그 간절한 기복이 얼마나 효험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후손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은 기쁘고 아름다운 의미들을 버무린 말

국어사전은 복을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와 그에 따른 기쁨’, ‘좋은 운수’라고 풀어놓고 있습니다.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말이지요. 복이라는 딱 한 마디 말 속에 건강, 재물, 다산, 승진, 풍년 등 온갖 기쁘고 아름다운 의미들이 버무려져 있으니까요. 그러니 해가 바뀔 무렵이면 너도나도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입이 닳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새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복이라는 말을 참 자주 사용합니다. 넉넉하고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에게 ‘복스럽게 생겼다’고 하고, 어떤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어디에 그런 복이 붙었을까’ 하며 부러워하지요. 자신에게 친절이나 도움을 주는 이에게는 ‘복 받을겨~’ 하며 농담도 건네고요. 또 어떤 일을 하면서 결과를 운에 맡길 때는 ‘복골복(실은 ‘복불복’이 맞는 말이랍니다)’이라 하며, 큰 기대를 했던 일이 어긋날 때는 ‘내 복에….’ 하며 자신보다는 복 자체를 탓하기도 합니다. 음식 먹는 것이 경망스러운 사람에게는 속으로 ‘참 복 없게 먹는다’는 흉도 보지요?

그런데 복, 말하자면 좋은 운수라는 것이 간절히 기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요즘은 거의 사라졌지만, 들에서 농사일을 하다 밥을 먹을 때는 밥 한 술을 떠서 던지며 ‘고수레’를 외치지요. 다들 고수레를 하는데 어떤 집은 풍년이고 어떤 집은 농사를 망치기도 합니다. 해마다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학부모들이 자녀의 좋은 성적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도 봅니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 부모들이 한결같이 좋은 성적을 원하니 그 기도를 듣는 절대자의 마음도 참 불편하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외할머니의 기복이나 전통 풍습, 학부모들의 기도를 떠올리면서 생각합니다. 복은 정말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절대자에 기대어야 하는 것인가 하고요. 하기야 복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청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탑 쌓듯 조신하고 경건해야 복도 쌓인다

에두를 필요 없이 말하자면, 복을 받고 못 받고는 다 자신이 할 나름 아닐까 싶군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듯이, 평소에 노력하고 연구하며 덕을 베푼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박복하여 팔자가 사나울 것이라는 말이지요.

어떤 사람이 날마다 하느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복권 1등에 당첨되게 해달라며 빌고 또 빌었지요.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어느 날 꿈에 하느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당연히 하느님을 붙들고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애원했지요. 그랬더니 하느님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 이놈아! 그러니까 우선 복권을 사란 말이다!”

그렇습니다. 복은 그렇게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면 세상에 박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을 받으려면 그에 합당한 정성과 준비가 필요한 법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오르고, 영업을 충실하게 해야 매출이 늘어나며, 적당한 운동과 고른 영양 섭취로 몸을 관리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요.

 

돌탑을 쌓듯 생활에 조신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라야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충북

단양군 사인암 앞 하천바닥에 누군가가 쌓아놓은 돌탑들.


혹시 산에 오르다 길옆에 차곡차곡 돌멩이들을 쌓아놓은 돌탑을 보신 적 있으신지요. 그 돌탑 위에 또 하나의 돌멩이를 올려보셨나요. 그때 어떠셨어요. 돌을 얹으면서 무게중심은 제대로 맞는지, 혹시 탑 전체가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무척 조심하고 정성을 들이셨지요? 돌을 올린 다음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소망을 빌고, 발걸음을 옮기면서는 탑이 제대로 서 있나 뒤돌아보기도 하셨지요? 이렇게 탑을 쌓듯 생활에 조신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라야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을 받으려면 근신하고 금해야 하는 일도 많지요. 상을 당한 사람은 일정 기간 다른 사람의 경사스런 일에 참석하는 것을 꺼립니다. 우리 속습에 기형아 출산을 막기 위해 임신 중에는 고래를 부치지 않고, 아기가 태어나면 문간에 금줄을 쳐 부정을 멀리 했습니다. 하다못해 조상님께서 드실 차례상 음식에 복숭아와 ‘치’로 끝나는 생선은 올리지 않습니다. 부적을 지니고 다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액을 막고 복을 부르려는 의도 아니겠습니까.


당신 곁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바로 복덩이

그러고 보면 복이란 이처럼 건실한 생활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덕을 쌓고 베풀며 때로는 삼가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것이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지거나 남이 거저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에는 ‘좋은 일은 많이 하면서 열심히 살고, 나쁜 일이나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마세요’ 하는 당부가 담겨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도 복을 받는데 꼭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정초라 토정비결이나 운세 보실 텐데요, ‘남쪽에 귀인이 있다’ 뭐 이런 수가 나오지는 않았는지요. 귀인을 꼭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당신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가, 혹은 남편이 바로 ‘복덩이’일 테니까요.

덤으로, 복을 받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그것은 웃음입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잖아요. 갈수록 세상살이가 고달퍼지니 웃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요? 그러니 더 웃으셔야죠. 그 어려운 웃음을 지으니 어찌 복이 오지 않고 배기겠어요.

‘졸필난필 잡문신문’과 몽당연필을 아껴주시는 님에게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