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갑자기 너그러워진 사회가 두렵다

몽당연필62 2007. 12. 12. 09:52

2007년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가 갑자기 너그러워졌다. 위장전입이야 자녀 교육을 위한 것이니 맹모삼천의 심정으로 이해할만 한 것이고, 위장취업이나 탈세야 적당한 구실이 있거나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었을 때 납부하면 문제삼지 않으며, 높은 지위로 많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묻었던 먼지-과거의 흠결-는 국민과 역사에 맡기면 된다.


이젠 어지간한 위법, 특히 위장전입과 탈세 수준의 위법행위까지는 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로 국민 사이에 합의가 된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학교 시험에서 커닝을 하다 들켜도 성적을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일 터이니 이해하고 용서해야 할 것이다. 어른도 아이 앞에서 바른생활 하라 야단치거나 품위를 지키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예전엔, 건널목의 신호등이 빨간색이면 잠자코 기다렸다가 초록색으로 바뀐 뒤 건넜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긴 했지만, 불편하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담배를 피울 때는, 쓰레기통이 없어서 불 꺼진 꽁초를 할 수 없이 주머니에 넣고 전철을 타기도 했다. 그것이 남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것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당연한 자세라 여겼다.

그런데 요즘엔 빨간불에도 자신있게 건널목을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씹던 껌은 단물이 빠지면 지하철 통풍구에 적당히 뱉어버릴 수도 있으리라. 볼 테면 봐라, 신고할 테면 신고해라 하는 배짱도 더불어 생길 터이다. 처음 몇 번은 많이 망설이고 주위 사람들 눈치도 볼 것이다. 하지만 곧 내성이 생기고 민망한 마음도 들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다 언젠가는 나도 음주운전쯤은 예사로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술을 못 마시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랄까), 나보다 힘 없고 약한 사람 위에 당당하게 군림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도 갖는다. 나 자신에게 마구 관대하고 너그러워지면서, 더불어 타인에게도 자꾸만 너그러워진다. 그런데 '너그럽다'는 것은 좋은 의미인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두렵다.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까지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지려는 것일까. 법, 질서, 양심, 이런 것들이 모두 무의미해질 만큼 모두가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있으니... 이젠 나도
 나 자신에게 많이 너그러워질 것이다. 그런데 두렵다. 자꾸만 너그러워지고 있는 나 자신과 우리 사회의 앞날이 정말 걱정스럽다.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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