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술 못 마시는 사람이 술 잘 드시는 분들께

몽당연필62 2007. 12. 7. 10:44

12월인가 싶더니 벌써 한주일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요즘 송년회를 비롯해 이런저런 술자리가 잦은 시기지요. 늦게 퇴근하면서 술에 취한 분들을 많이 봅니다. 밤바람은 차가운데 골목에 쓰러져 있는 분, 먹은 것을 토해 뭘 먹었었나 일일이 확인하시는(?) 분,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로 비틀거리며 들어가서 택시를 잡느라 애쓰시는 분...

 

그렇게 취해서 인사불성인 분들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챙겨주는 사람 없이 골목에 주저앉은 사람이 혹 밤새도록 저렇게 있다가 추위에 잘못 되는 것은 아닌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다 하더라도 집은 제대로 찾아갈 것인지, 내일 출근은 또 어떻게 할 것인지, 저 지경이 된 사람을 버려두고 간 동료 주당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불안한 믿음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어쨌든 그들은 대부분 다음날 멀쩡히 출근을 하더라는 믿음입니다('대부분'이라는 것은, 다음날 멀쩡히 출근하지 못한 사람도 있더라는 이야기지요). 출근은 하더라도 물론 술 냄새가 사라지지 않고 업무도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체질상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는 4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술 권하는 것이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그럼에도 빠져서는 안되는 술자리가 얼마나 많은지, 술을 즐겨 마시는 분들은 이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술자리에 참석하면 소줏잔에 사이다를 마시며 안줏발만 세우는 얄미운 존재랍니다.

 

술 잘 드시는 분이 술 잘 못 마시는 사람의 불편과 고통을 이해하기 힘들듯이, 저 또한 술 잘 드시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술 드시는 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왜들 몸도 마음도 가누지 못하게 취해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즐겁고 반가웠을 술자리가 끝난 뒤의 싸우고 쓰러지고 막무가내인 상황을 맨정신인 제가 챙기고 정리하면서, 내가 왜 중간에 도망가지 않고 이 고생인가 하는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25년 넘게 했으니 얼마나 많은 술자리에 참석했겠습니까. 동창회나 회사 직원들과의 술자리는 물론이고 접대를 하거나 접대를 받는 술자리도 많았습니다. 그 술자리 끝에, 취해서 인사불성인 선배나 상사를 댁에까지 모셔다드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며, 비틀거리는 동료를 택시에 태워 보낸 적도 부지기수입니다. 제가 맨정신이기에 끝까지 남아 취한 사람들 안전하게 귀가시킨 후에야 저도 마음 놓고 귀가하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술만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곤 하시는 분들, 혹시 이런 생각 해보셨는지요? 당신이 그 지경일 때, 누군가는 성질 누르며 당신을 챙겨드리고 있었다는 생각요. 당신이 지난 밤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 기억이 없다고 말할 때, 누군가는 하마처럼 무거운 당신을 이끌어 택시에 태우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요금까지 선불로 냈을 거라는 생각요. 집에서 걱정하고 애태우며 기다리고 있었을 부인과 아이들 생각요. 술 마신 다음 날, 출근은 했지만 채 펴지지 않은 혀로 해롱해롱하는 당신 때문에 동료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그런 생각요...

 

우리 사회는 술 못마시는 것이 정말 불편한 사회입니다. '술을 잘 마셔야 출세한다'는 말은 금과옥조이며, 당연히 술을 못 마시면 회사와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뒤처지게 됩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도, 저는 정말 술을 좀 마실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팽팽한 긴장의 끈을 탁! 놓아버리고 싶은 때가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맨정신이기 때문에 삶이 피곤하고 신산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체질이, 그것도 집안 내력이 술과는 상극이니 도리 없이 맨정신으로 살아가야겠지요.

 

술 잘 마시는 분들!

술 못 마시는 사람으로서 부탁합니다.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는 것은 좋으나, 인사불성은 되지 마세요. 당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족이 걱정하고, 동료들이 걱정하며, 우리 사회가 당신을 걱정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집안에서 믿음직스러운 가장이거나 사랑스러운 가족이며, 직장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는 일꾼이며, 국가 전체로 보아도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소중한 구성원이잖아요!

 

그리고 덧붙여 부탁드리는데요, 저처럼 술 못 마시는 사람 생각도 좀 해주시고요. 술자리에서 겨우 사이다나 마시는 주제에 비싼 안주만 축낸다는 소리 들으면, 그것이 농담이라 할지라도 참 민망합니다. 왜냐하면 술 못 마시는 사람도 송년회나 동창회 자리에 참여할 자격은 있는 것이니까요. 때로는 동료들 가운데 술 못 마시는 사람도 한두 명 끼어있으면 좋지 않나요? 술값 바가지 쓰지 않게 감독(?)할 수도 있고, 당신이 끝내 과도한 음주를 했을 때 챙겨줄 사람은 바로 그 '안줏발이나 세우고 있는 놈'일 테니까요. ^^

 

날이 춥습니다. 어젯밤엔 눈발도 날렸습니다. 오늘이 12월 초순의 금요일이라 또 많은 술자리가 있겠지요? 부디 즐겁게 드시고, '자신의 의지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안전하게 귀가하시길 기대합니다.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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