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방송언어의 품질 떨어뜨린 대조영 예고방송

몽당연필62 2007. 11. 10. 10:12

"우린 끝내 승자로 기록되어질 것이다!"

기분 좋은 주말 오전, 그러니까 11월 10일 오전 10시쯤, 텔레비전을 보는데 드라마 '대조영' 예고방송이 나왔다. 평소 '대조영'을 보지 않기에 다른 일을 하다 무심히 보았는데, 최수종이 "우린 끝내 승자로 기록되어질 것이다!"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승자로 기록되어질 것'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주말 오전의 적당한 게으름으로 좋았던 기분이 일순간에 망가졌다. 아니, '승자로 기록될 것'이라고 하면 좋을 것을 굳이 '승자로 기록되어질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뭔가? 물론 방송에서 어법에 맞지 않고 천박한 용어나 말을 많이 사용한다는 지적이 어제오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출연자들의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토크쇼 프로그램들이 자주 그런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드라마는 애드리브가 난무하는 토크쇼와 다르다. 작가가 쓴 대본이 있고,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가 있으며, 드라마 전체를 지휘하는 프로듀서가 있어서, 대사를 정제할 기회나 단계가 몇 차례 있는 것이다. '대조영'은 드라마다. 그러니 '승자로 기록되어질 것'이라는 외침이 전파를 탄 것은, 제작진 모두가 넋놓고 실수를 한 것이거나 그것을 잡아낼 언어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승자로 기록되어질 것'이라는 말이 예고방송에서 소리높여 외쳐졌다는 것은 정말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평소 쓰는 말을 생각해보라. 다음 예문들은 앞의 것이 옳고 뒤의 것은 틀린 문장이다.

사장될 위기에 처한 법안들 / 사장되어질 위기에 처한 법안들

- 오늘 오후로 예정된 개회식에서 / 오늘 오후로 예정되어진 개회식에서

- 난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 난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지는데

  * 사실 '생각된다'도 '생각한다'가 더 정확하다.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어서 소리는 물론이고 의미도 바뀐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방송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당대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바른 언어(특히 표준어)에서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요즘은 아나운서들마저도 '안절부절못하다'를 '안절부절하다'로, '우연히'를 '우연찮게'로 말하고 있는 지경인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하물며 연예인들이 나와 잡담을 늘어놓는 프로그램들에서는 비교하는 의미로 '다르다'를 써야 할 데에 '틀리다'를 쓰는 것이 다반사이니 일러 무엇하랴. 

 

방송언어는 국민의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방송언어는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계도하는 임무도 수행해야 한다. 우리가 지도자의 도덕성을 왜 요구하는가. 국민이 그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방송은 이 시대에 거대한 권력으로서, 대중에게는 지도자의 행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 '대조영' 예고방송 하나만을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출연자들의 언어 수준이나 친절하게 보여주는 자막까지 들추자면 하고픈 이야기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방송사들의 주의와 개선을 기대한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