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농업인의 날’ 20년, 농업과 농민의 의미를 묻습니다

몽당연필62 2016. 11. 11. 09:57

농촌도 농민도 쇠락하고 있습니다. 농업의 가치는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1111일 농업인의 날을 맞아 우리 농업과 농민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사진 제공=농민신문사>

 

 

농업인의 날’ 20, 농업과 농민의 의미를 묻습니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던 들판이 어느덧 휑뎅그렁하니 비어가고 있습니다. 농업의 기술 발달과 형태 변화로 농번기와 농한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벼농사를 마무리한 이제부터 농민들이 한숨 돌리게 되는 것은 사실이죠. 올여름 유난했던 폭염과 가뭄 그리고 다된 가을에 몰아닥친 태풍 등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이 시기는 농민들이 풍요를 누리며 안온한 겨울을 준비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한숨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어 텅 빈 들판을 채우고 있네요. 요즘 쌀값이 20년 전 수준이라지요. 풍년이 들어도 가정 살림이 자꾸만 축나는 판에 풍년이 들수록 직불금으로 나라 살림 거덜 내는 사람들이라는 소리까지 들려오니, 농민들이 어찌 웃음기를 머금을 수 있을까요?

 

농업인의 날 만들어 농민 지위 높아졌나

마침 11일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농업인의 날은 1996년 정부 지정 공식 기념일이 됐으니 올해로 제정 20주년을 맞은 겁니다. 정부 차원에서 농업인의 날을 만든 취지는 농업이 국가경제의 바탕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농민의 자부심을 키우며 그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서겠죠.

그러나 제정 당시를 돌이켜보면 우리 농업은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습니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가 종결됨에 따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쌀시장까지 관세화유예 및 최소시장접근 방식으로 개방됨으로써 농민들의 위기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지요. 따라서 농업인의 날 제정에는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위무할 필요성도 강하게 작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 농민들의 지위가 향상되거나 자부심이 커지지 않았고, 불만도 해소되기는커녕 누적되기만 했습니다. 특히 200441일 칠레부터 올해 715일 콜롬비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52개 나라와 체결해 현재 발효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이 결정타였습니다. 이로 인해 외국 농산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거죠.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 속도는 급격해졌고, 도시근로자가구와의 소득 격차도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시선에서 농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은 느껴지지 않네요.

 

정책에 희생된 농업, 정책으로 되살려야

이 와중에 928일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마치 남은 목숨을 거두려는 듯 농민들을 옥죄고, 일부 경제인들은 농업 무용론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력 경제단체의 회장은 식량안보라는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며 골치 아픈 쌀농사 포기를 종용하네요.

먼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종 법률과 제도 등 정책 때문에 희생하고 양보한 농업을 더 강력한 정책으로 보호하고 구제할 의지는 없는 것인가요? 선진국들의 농업 보호를 위한 국가적 노력을 우리는 기대하면 안되는 것인가요? 식량은 과연 공산품보다 가치가 없는 재화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요?

기업 등 경제계에도 묻습니다. 공업 발전과 국익에 농업은 정말 걸림돌에 불과합니까?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해온 200조원 안팎의 공적자금에다 최근 한진해운 등의 회생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 논의는 괜찮고, 쌀값이 떨어졌을 때 농민들에게 변동직불금을 지급하면 밑 빠진 독에 세금 쏟아붓는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냥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FTA로 얻은 이익금 중 일부를 FTA로 피해를 본 분야에 나눠달라는 요청에 귀 막고 입 닫으면서, 요즘 언론에 도배되고 있는 바와 같이 권력의 정당하지 않은 요구에는 거액을 앞 다퉈 갖다 바치는 것이 기업윤리에 합당합니까?

 

어느 일방의 탐욕이나 희생 아닌 상생 필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과 함께 공화당이 승리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트럼프 당선자가 호언해 왔듯이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을 강화할 것이고,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인 우리나라는 강력한 통상 압박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기업들은 당연히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겠죠. 미국이 FTA를 폐기하거나 재협상하자고 할 가능성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수출을 위해 무엇을 내줘야 할까요? 가장 쉬운 게 농축산물 시장 아닙니까? 우리 농업에는 이처럼 또 한 번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100층 넘는 마천루와 가득 쌓인 돈도 우리 경제의 자부심이고 자랑이지만, 이것들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밥은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고,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를 공급해줍니다. 어떤 경우에도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존중받아야 하며 이 땅에 농업이 유지돼야 하는 이유죠.

정부에 쌀값 인상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던 백남기 농민이 공권력의 힘에 쓰러져 일년 가까이 사경을 헤매다 사망했지만, 정부는 사과나 애도는커녕 망인에 대한 예의마저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농업인의 날을 맞아 정부와 정치권에, 기업과 경제계에,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엄중히 묻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농업과 농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