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설날과 밸런타인데이, 떡국과 초콜릿

몽당연필62 2013. 2. 14. 08:00

설날과 밸런타인데이, 떡국과 초콜릿

 

이번 주에는 문화적으로 의미가 큰 두 개의 명절(?)이 들어 있다. 설날(10)과 밸런타인데이(14)가 그것이다. 설날과 밸런타인데이에는 각각 그 날을 상징하는 중요한 음식(식품)이 있다. 떡국과 초콜릿이다.

떡국은 <동국세시기> 등 연중행사와 풍습을 담은 책들에 언급돼 있고, 육당 최남선도 <조선상식문답>에서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됐으며 상고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飮福)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했다니, 이로 미루어 떡국의 오랜 역사가 짐작된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이벤트가 많이 열린다. 왜 하필 초콜릿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초콜릿의 단맛이 사랑의 달콤함을 상징한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일본 초콜릿 업체의 상술에 기인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문득 한가지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서 한해에 판매되는 떡국 재료 가래떡과 초콜릿 중 어느 쪽의 시장규모가 더 클까 하는 것이다. 물론 떡국을 설날에만 먹는 것이 아니고 초콜릿도 밸런타인데이에만 먹는 것이 아니니 판단이 쉽지 않다. 더욱이 가래떡은 떡국에 머무르지 않고 분식집을 비롯한 적지 않은 음식점에서 떡라면·떡만둣국·굴떡국 등으로 세력을 넓혔으며, 초콜릿도 이에 질세라 초코파이·초코우유·초코아이스크림 등 곁가지를 거느리지 않았는가.

정확한 매출 자료를 구하지 못해 가래떡 식품군과 초콜릿 식품군의 시장규모를 직접 비교할 수 없지만, 떡볶이가 포장마차의 대표 메뉴로서 국민간식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가래떡의 저력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층에서 워낙 초콜릿을 좋아하고 온갖 과자와 빵에 초콜릿을 발라놓았으니, 어쩌면 초콜릿 식품군의 매출액이 가래떡 식품군의 매출액을 상상 이상으로 압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초콜릿 원료가 되는 코코아와 완제품 초콜릿을 합친 전체 초콜릿류의 연간 수입액은 20029000만달러(970억원)에서 201226000만달러(2800억원)로 급증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그야말로 수입액일 뿐, 코코아가 국내에서 가공되고 초콜릿이 유통과정을 거쳐 빵·과자·케이크·아이스크림 등과 어우러지면서 몇 배의 부가가치를 유발했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불과 나흘 간격으로 든 올해의 설날과 밸런타인데이는 떡국과 초콜릿을 통해 우리 고유의 것과 외국에서 유입된 것의 경쟁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에겐 외국에서 들여온 것 때문에 조금씩 사라지는가 싶더니 결국엔 완전히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특히 농산물 중에서 목화와 밀이 그랬고, 이제 옥수수·콩·참깨 등도 그 뒤를 따르는 양상이다. 밀의 경우 이 땅에 밀농사를 다시 살려보자고 많은 사람들이 20년 넘게 애를 쓰고 있지만, 국산 밀의 시장점유비는 2% 안팎에 불과하다.

이처럼 무엇이든 허물기는 쉬워도, 허물어진 것을 다시 쌓거나 세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민속촌이나 박물관으로 들어간 단오·유두·백중날을 우리 사회에서 다시 즐기기는 어렵듯이, 정월대보름날과 오곡밥 그리고 동지와 팥죽도 한번 멀어지면 그만일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가래떡을 만든 쌀 역시 외국산이 적지 않다. 설날에 먹으며 가장 한국적인 전통이라 생각했던 떡국에마저도 외국 농부들의 혼이 담겼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그러니 밸런타인데이와 빼빼로데이가 설날과 추석을 폐지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으며, 초콜릿과 빼빼로가 떡국과 송편을 몰아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명절과 음식은 그 나라의 전통이고 문화이며 정체성이다. 국민 대부분이 떡국이나 초콜릿을 먹을 한 주를 보내면서 한 세대쯤 후의 설날과 밸런타인데이를 상상해본다. 그때 설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귀성을 하고, 떡국을 먹고 있을까. 혹시 밸런타인데이가 공휴일로 제정돼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감이 약해졌다는 의미이기에, 한 그릇의 떡국에도 애틋한 마음이 깃든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