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석유보다 중요한 게 식량이다

몽당연필62 2011. 11. 22. 12:54

석유보다 중요한 게 식량이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물결이나 밤늦도록 환하게 불을 밝힌 초고층 빌딩들을 보면 내가 참 좋은 시대에 좋은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들판에선 콤바인 한 대가 사람 수십 명 이상의 힘으로 땅을 갈고, 예전 같으면 농한기로 접어들 시기이건만 시설하우스에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싱싱한 농산물이 생산되니 어찌 경이롭지 않으랴.

 

매력적인 연료 석유, 하지만 30년이면 고갈돼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우리가 오랜 인류사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 이룩한 이 찬란한 문명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지하거나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석유그것 하나만 없다고 가정해도 우울해지는 데 부족함이 없으니까.

석유는 가격에 비해 열효율이 매우 높으면서도 사용 범위가 넓은 매력적인 에너지원이다. 자동차·항공기·선박·농기계 등의 연료가 석유이고, 아스팔트·플라스틱·의약품·섬유제품 등도 석유를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전기생산 역시 많은 석유를 필요로 하는데, 원자력발전마저도 건설이나 정비, 핵연료 추출과 가동 과정에서 석유나 가스에 의존한다.

문제는 석유가 무한정 존재하는 게 아니라 머지않아 고갈될 에너지원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비평가인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63)가 쓴 장기비상시대라는 책은, 앞으로 불과 30여년 뒤면 석유가 완전 고갈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지구에 존재했던 석유 총량 2조 배럴 가운데 지표면에 가까워 채굴이 쉽고 품질도 좋은 1조 배럴은 지금까지 뽑아 써버렸다.

전 세계의 석유 생산량이 2005년을 즈음해 정점을 지난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가운데(지속적인 고유가에도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남은 1조 배럴의 석유는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소비를 계속할 경우 겨우 30여년 사용할 물량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석유의 상당량은 심해 유전에 존재해 채굴이 어렵거나 반고체 또는 고체 상태로 존재해 채굴은 물론 정유에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석유문명 끝나면 농경시대로 회귀?

그러면 석유시대가 끝나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장기비상시대는 불과 몇십년 뒤 석유시대가 끝나면 인류는 엄청난 혼란을 거쳐 다시 농경시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석유 이상의, 혹은 석유와 비슷한 정도의 효율을 가진 대체에너지는 개발과 이용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개발이 가능하다 해도 석유시대의 종말 이전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석유가 고갈된 미래의 신농경시대는 석유가 아직 본격적으로 사용되지 않던 1800년대 이전의 농경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도시와 교통 시스템이 붕괴되고 대규모 유통이 불가능해져, 우량 농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에서 사람들은 우마에 노동력을 의지하고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지역 내에서 얻거나 자급자족할 것이다. 상업자본의 지배가 없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식량 생산을 담당하는 농부나 거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목수 등의 지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장기비상시대는 이처럼 석유시대의 종말을 암울하게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석유나 눈부신 과학기술이 아니라 바로 먹을거리라는 점이다. 석유가 고갈되면 우량한 농지를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되고 농부의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식량보다 중요한 것은 없음을 웅변한다.

운이 좋으면 인류는 석유가 고갈되기 이전에 석유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효율을 지닌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서 석유를 통해 꽃피운 문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도시인구 증가 및 농업인구의 희소성으로 인해 식량 생산의 기술자인 농부의 지위는 지금보다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식량생산 책임진 농부를 귀하고 고맙게 여겨야

배춧값이 폭락해 농부들이 울상인 가운데, 쌀값은 오를 가능성이 있어 물가당국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런데 당국이 혹시나 오를까 떨며 주시하고 있는 쌀값이 사실은 10여년 전과 같은 가격(산지 기준, 165천원/80)이고, 한 사람이 일년 먹을 쌀값이라야 골프 한번 안 치면 되는 금액에 불과하다. 인건비나 자재비는 다 올라도 먹을거리 값은 오르면 안된다니, 이래저래 우리 농부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진다.

정말 석유가 고갈되고 옛날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세상이 되면 그때는 우리 농부들의 세상이 오려나. 미국과의 FTA 국회 비준이 태풍의 눈처럼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FTA가 발효되면 우리 농부들의 어려움이 훨씬 커질 텐데, 어서 석유가 고갈돼 농경사회로 돌아가버리길 바랄 수도 없고,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