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진안, 마이산을 진안보다 먼저 알았다

몽당연필62 2009. 11. 10. 17:03

진안, 마이산을 진안보다 먼저 알았다


진안은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권 고원지대에 위치해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꼽혀왔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타지 사람들이 진안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마이산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진안’이라는 이름보다 ‘마이산'이 더 널리 알려진 고장 진안은 2007년 12월 익산과 장수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전북 동부 지역 무주·장수와 함께 ‘무진장’의 일원인 진안(鎭安)군은 1읍 10면의 행정구역에 약 3만 명의 주민이 사는 고장이다. 면적이 789㎢로 도내에서 두 번째로 넓은데, 노령산맥 동쪽과 소백산맥 서쪽 사이에 위치한 해발 500m 안팎의 고원지대여서 임야가 80%나 되며 논밭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진안’ 하면 그곳이 어디에 있는 고장인지 고개를 갸웃하지만, ‘마이산’ 하면 “아, 말의 귀처럼 쫑긋 솟은 바위산!” 하고 아는 체를 한다. 마이산이 그만큼 특이하게 생긴 산이기 때문이다. 진안군은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한 해에 1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들 대다수가 도립공원인 마이산을 찾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이산은 진안 사람들에게 자연이 안긴 가장 큰 선물인 셈이다.


자연이 빚어 진안 사람들에게 안긴 선물, 마이산

진안읍과 마령면의 경계를 이루며, 특히 진안읍내 어디서나 눈에 띄는 마이산(馬耳山↓)은 이름 그대로 나란히 솟은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마치 말의 귀처럼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솟은 것을 숫마이봉(680m), 서쪽에 솟은 것을 암마이봉(686m)이라고 하며(봉우리의 높이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는데, 여기서는 진안군 문화관광과에서 제작한 진안군 관광 안내도를 참고하였다), 자갈 퇴적층으로 된 봉우리 곳곳이 풍화작용에 의해 떨어져나가는 타포니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매우 특이한 바위산이다.  

마이산은 철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고 한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이 울창해져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이므로 문필봉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마이산에는 행정구역상 마령면 동촌리에 속하는 곳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임실군의 성수산에서 돌아가다가 들러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은수사,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80여 기의 석탑을 거느린 탑사 등의 유적이 있다.  

특히 탑사의 석탑들(↑)은 이갑룡 처사(1860~1957)라는 사람이 1885년 입산하여 30여 년에 걸쳐 쌓았으며, 대부분 주위의 천연석들을 모아 쌓았지만 천지탑 등 주요 탑들은 전국 팔도의 명산에서 가져온 돌을 한두 개씩 넣어 신묘한 정기를 더했다고 한다. 탑사에는 또 용궁(↓)이라는 돌샘이 있는데 여기서 섬진강 지류가 시작한다고 한다. 섬진강 본류는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 자락에 있는 데미샘에서 발원한다. 

  

진안은 마이산 외에도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고원지대답게 아름다운 산과 계곡이 많은 고장이다. 높이 1002m로 정천면과 주천면 경계에 솟은 구봉산(九峰山↑)은 이름이 말해주듯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노령산맥에 속하는 구봉산은 봉우리들이 바위이기는 하나 마이산과 달리 날카롭고 수려하며 아기자기한 암벽등반 코스가 좋아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다. 정상인 장군봉에 오르면 대둔산과 덕유산은 물론 멀리 지리산까지 이름 있는 산들을 관망할 수 있다고 한다.  

운장산 동북쪽 명덕봉과 명도봉 사이에는 운일암이라고도 하고 반일암이라고도 하는 협곡이 있다. 주천면 대불리와 주양리 일대에 드리워진 5㎞ 길이의 이 계곡은 온갖 기암과 괴석이 물길을 따라 드리워져 있는데(↑), 주위에 오가는 것이 구름밖에 없어 운일암(雲日岩)이라 부르는가 하면 하루 중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 없어 반일암(半日岩)이라 부르기도 한다. 운일암·반일암은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그만이지만 단풍이 드는 가을에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노령과 소백의 연봉들이 진안을 지난다

운일암·반일암이 노령산맥의 계곡이라면, 백운면 백암리 덕태산(1113m) 자락의 백운동계곡(↓)은 소백산맥에 속하는 계곡이다. 특히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5㎞쯤 올라가노라면 30여 평의 널따란 바위에서 떨어지는 높이 5m가량의 폭포가 울창한 수목 사이로 보인다. 이곳은 봄에는 분홍빛 진달래, 여름에는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벽계수,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 백운면은 여유를 갖고 찬찬히 둘러보면 더욱 좋은 곳이다. 앞서 말한 섬진강 본류 발원지 데미샘과 백운동계곡 외에 영모정과 최양 선생 유허비도 있기 때문이다.

노촌리 하천 가에 세워진 정자 영모정(↓)은 고종 6년(1869)에 신의연이라는 효자를 추모하여 세운 것인데, 하천변 언덕배기의 자연지세에 그대로 짓다 보니 앞쪽 네 개의 기둥이 다른 것들보다 1m정도 길고 지붕도 기와가 아닌 점판암 판돌로 인 것이 특징이다. 영모정이 있는 하천과 숲은 풍광도 빼어나, 지난해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네티즌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반송리 길가에 세워져 있는 만육 최양 선생 유허비(↑)는 이 마을이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여 은둔하였던 최양 선생(1351∼1424)의 자취가 어린 곳임을 말해 준다. 최양은 정몽주의 생질로서 벼슬살이를 하던 중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해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 팔공산에서 3년 동안 은거했으며 끝내 이성계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가 없는 진안에서 산도 아니고 계곡도 아니면서 아름다운 경관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처가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바로 2001년 용담댐 준공으로 생겨난 용담호(↑)이다. 용담댐은 용담면 월계리와 안천면 삼락리 사이 금강 상류에 놓인 다목적 댐으로, 담수면적이 30㎢이고 총 저수용량이 8억 1500만 톤에 이른다. 용담댐 건설로 인해 1읍 5개 면의 68개 마을이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대신 굽이굽이 아름다운 호반의 풍광과 전주권역 생활용수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얻었다.  

한편 성수면 좌포리 양화마을 대두산 기슭에는 풍혈냉천(風穴冷泉)이 있어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바위틈인 풍혈(↑)에서는 한여름은 물론 일년 내내 4℃의 찬바람이 나오고, 근처 냉천은 석간수(石間水)로서 사시사철 3℃의 찬물이 솟는다는 것이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찾는 사람이 드문 요즘 풍혈은 가게를 하는 마을 주민이 음료수 등을 냉장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하느라 출입문을 잠가놓고 있다.


팔경·팔품·팔미가 있어 눈도 입도 몸도 즐겁다

진안을 여행하다 보면 팔경, 팔품, 팔미라는 말을 듣게 된다. 진안을 대표하는 각각 여덟 가지의 풍경과 특산물 그리고 맛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안에 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품질 좋고 맛있는 특산물과 별미를 맛본다면 어찌 눈과 입과 몸이 즐겁지 않겠는가.

먼저 팔경(八景)에 마이산, 구봉산, 마이산 석탑군, 용담호, 운일암·반일암, 운장산 자연휴양림, 운장산, 풍혈냉천이 포함된다. 팔품(八品)에는 고추, 곶감, 더덕, 인삼, 인진쑥, 표고버섯, 한과, 흑돼지가 꼽힌다. 또 팔미(八味)로는 더덕구이, 버섯모듬전골, 산채비빔밥, 송어회, 쏘가리매운탕, 애저, 흑돼지 삼겹살, 흑염소 전골이 거론되고 있다.  

진안은 특히 팔품 가운데서도 인삼 재배가 성한 곳이다. 군 내 어디서나 인삼밭(↑)을 볼 수 있는데, 진안 사람들은 인삼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홍삼 제조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진안읍내의 인삼상설시장은 말할 것 없고, 한방약초센터(↓)에서도 인삼은 가장 많이 거래되는 품목이다. 한방약초센터는 2007년 10월 개장했는데 진안에서 생산되는 인삼·홍삼과 약초류의 유통을 위해 개설되었다.  

마지막으로 진안읍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군하리를 지나는데 이재명 의사 동상(↓)이 서 있다. 이재명 의사(1886~1910)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알고 있던 터라 유심히 살펴보니, 그가 평양 출생이지만 진안 이씨 후손이기에 진안 이씨 제각 앞에 2001년 동상을 세웠다는 설명문이 있다. 그는 1909년 명동성당에서 매국노 이완용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일본 경찰에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순국했다.  

진안 여행을 마치고 귀로에 오르니 해가 짧아진 탓에 금세 어둠이 몰려온다. 마이산보다 귀에 설었던 이름 진안. 하지만 앞으로는 마이산은 물론이고 진안에 대해서도 제법 아는 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