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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추억을 공유한 또 다른 나

몽당연필62 2008. 12. 15. 19:19

동창, 추억을 공유한 또 다른 나


국어사전은 ‘동창(同窓)’을 ‘한 학교에서 공부를 한 사이’라고 간단하게 적고 있다. 이 말에 쓰인 한자로 미루어 생각하면 동창은 ‘같은 창문으로 드나들며’ 혹은 ‘같은 창문 안에서’ 공부한 이들이다. 동창 중에서도 특히 동기동창은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아픔도 함께 나눴기에 살가울 수밖에 없다. 몇 개 낱말로 간단하게 설명되는 그런 사이가 아닌 것이다.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다. ‘학산서교 27회 모임 12월 23일 화요일 오후 6시 용산 시골집’. 초등학교 동창회 송년 모임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창회 모임도 여러 날 전 인터넷 카페에 공지사항으로 떴다. 때는 바야흐로 모임의 계절, 특히 동창회 시즌임을 실감한다.

동창회는 법률로 규정된 것이 아닌데도 저절로 조직되고 오래 유지되는 가장 강력한 자생조직이다. 이 땅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나온 사람 가운데 남녀를 불문하고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식적인 모임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몇몇 친한 동창(이 글에서 동창은 동기동창이다)끼리는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낼 것이다.

동창(同窓)의 사전적 의미는 ‘한 학교에서 공부를 한 사이’이다. 이 말을 이룬 한자를 살펴보면 ‘창문이 같다’는 뜻이니, 이는 ‘같은 창문으로 드나들며’ 혹은 ‘같은 창문 안에서’ 공부한 이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동창은 또래집단으로서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아픔도 함께 나눴기에 대하는 마음이 각별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다.

동창회가 개최 금지령에서 해제된 것도 아닌데 온 나라가 갑자기 동창회 열풍에 휩싸인 때는 2000년이다. 한 해 전 설립되어 ‘동창 커뮤니티’를 핵심 서비스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 ‘아이러브스쿨’로 사람들이 ‘등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텔레비전에서도 동창 또는 동창회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더욱 어려워지리라는 전망을 비웃듯 사이버에서의 만남이 현실로 이어졌고,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한 중년의 아줌마와 아저씨들은 “철수야!” “영희구나!”를 외치며 철부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동창회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 사이트는 이제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가고 있지만, 이 땅의 동창들은 인터넷의 무수한 카페들을 ‘소굴’로 삼으면서 여전히 활발하게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동창’들이 ‘회’를 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우선, 가장 순수하면서도 생각이 많았던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가 동창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창은 내가 갖고 있는 추억이나 비밀을 함께 나눠가진 또 다른 나인 것이다.

동창들이 나누는 이야기들도 거의가 불안한 미래보다는 이미 지난 일이어서 부담 없고 친숙한 과거사이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는 누가 수업 시간에 오줌을 쌌었지, 누구는 누구를 좋아했었지 하는 이야기들에 웃음보가 터진다. 중학교 동창회는 사춘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만큼 이성교제나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선생님께 슬리퍼로 뺨을 맞고,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학생주임에게 걸리고, 대학교 진학이나 취업을 앞두고 고민하던 것은 고등학교 동창회의 대화 메뉴이다.

장학회 운영 등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단순한 친목 모임으로서 밥 먹고 노래방 갔다가 일부는 귀가하고 그래도 아쉬움 남는 친구끼리는 호프집으로 향하는 것도 동창 모임의 특징이다. 회장과 총무가 있지만 격식이 없고, 어지간한 실수는 웃음으로 용서가 되니 그야말로 부담 없고 재미있는 모임이기도 하다. 게다가 젊었을 때는 본인 결혼, 나이가 들어서는 자녀 혼사나 부모 상사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위로를 해주는 사람도 바로 동창생이다. 

그렇다고 동창이 그저 반갑고 동창회가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모임을 하다 보면 술버릇 고약한 친구가 한둘쯤은 있게 마련이고, 동창회를 보험이나 자동차 마케팅 기회로 활용해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친구도 있다. 또 남녀 공학(물론 초등학교는 모두가 공학이다)을 다닌 사람이 동창회에서 첫사랑과 재회하거나 이성 동창과 정분이 나 가정불화를 겪은 뉴스도 더러 들려오지 않던가.

모범생에 공부깨나 했던 나는 월급쟁이인데 껄렁하고 말썽만 피우던 놈은 사장에 돈 많이 벌어서 속상하는 자리도 동창회고, 나는 착한 남편 만나 줄이고 아끼며 살뜰하게 사는데도 궁기를 못 면하고 있건만 머슴애들이나 홀리고 다니던 계집애가 시집 잘 간 덕분에 얼굴 뜯어고치고 보석 목걸이 걸고 나온 것에 배 아픈 자리도 동창회다. 또 친구들 자식은 어쩌면 내 자식보다 공부도 잘하고 시집장가도 잘 가는지!

동창회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 친구고 뭐고 다시는 상종을 안 하리라 내심 다짐했다가도, 모임이 열리면 무엇에 홀린 것처럼 또 나가게 되니 그것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국적도 바꾸고 배우자도 바꾸고 성과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지만, 학적만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인가. 다녔던 시골 학교가 폐교된 지 오래여도 동창생의 우정은 영원하리란 믿음 때문인가….

 

 

12월, 거의 모든 동창회가 송년회를 겸한 모임 날짜를 잡는 시기이다. 연락이 오거든, 연락이 없으면 내가 주선해서라도 동창들을 만나보자. 바로 그 자리에, 우리 생애에서 가장 소중하고 빛나던 시절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또 다른 나'들이 앨범에서 튀어나와 앉아 있을 것이다. 얼굴이 무척이나 긴 ‘말대가리’도, 피부가 유난히 검은 ‘깜상’도, 얼굴에 주근깨투성이인 ‘깨순이’도, 해맑은 웃음으로 “친구야, 반갑다!” 하면서 손을 내밀 것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