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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고향 오일장

몽당연필62 2008. 5. 28. 13:27

추억 속의 고향 오일장

4일과 9일이면 내 마음에 독천 장이 선다


남정네들은 딱 한 수면 외통수가 틀림없어 보이는 장기판의 유혹에 주머니 속의 돈을 가늠해 보고, 공터에 빙 둘러선 아낙과 노인네들은 약장수의 입담에 얼이 빠졌다. 소를 팔고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길이 좁다고 억지 부리는 아저씨며, 들치기인지 날치기인지 돈가방을 잃고 길바닥에 누워버린 아주머니, 흥정이 끝내 싸움으로 번진 좌판도 장날의 풍경화다.


동행과 이야기가 있어 이십 리 길도 멀지 않다

새벽 어스름에 어머니는 길을 나선다. 은곡에서 장이 서는 면 소재지 독천까지는 이십 리, 그냥 걸어도 수월찮을 산길과 자갈길이 태반인데 머리에 광주리까지 이었다. 광주리 안에는 참깨 한 말, 계란꾸러미 서너 개 따위가 들어 있다. 그것으로 돈을 사서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나머지는 우리들 납부금 등으로 가용할 터이다.

동네 어귀에서 만난 네댓 명의 장꾼들과 길동무가 되어 뉘 집 며느리는 산달이 언제라더라, 뉘 집 딸내미는 대처로 식모살이 갔다더라, 이 얘기 저 얘기로 다리 아픈 줄 모르고 걷다 보니 해가 멀리 산 위로 두어 뼘쯤 올랐고 어느덧 독천마을 초입.

 

 

장터까지는 다리품을 조금 더 팔아야 하는데, 마중하듯 나와 기다리던 매집(買集) 상인 예닐곱 명이 우르르 장꾼들에게 달려들어 머리에 인 것을 앞 다퉈 낚아챈다.

“아니어라우, 폴라고 갖고 온 것이 아니랑께라우.”

“아따, 폴도 안 할람시로 뭣 할라고 새복부터 쎄 빠지게 여그까지 이고 왔다요?”

짐짓 손사래 치며 빤한 거짓말을 하는 장꾼이나 제 것 내놓으라는 듯 강박하는 상인이나 물론 악의는 없다.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사람과 남들보다 먼저 물건을 확보하려는 사람 사이의 당연한 흥정일 뿐이다. 결국 성질 급한 장동댁이나 은산댁은 일찌감치 장짐을 부리고, 진중한 어머니는 수양리댁과 함께 태반이 난전(亂廛)에 벌인 좌판(坐板)이기는 해도 기어이 장에 이르러 광주리를 내려놓고는 똬리로 얹었던 수건으로 이마에 송송한 땀방울을 훔친다.

참깨든 녹두든 계란이든 고추든, 돈살 것들을 다 처분하면 흡족하고 서운한 기분은 그때뿐이고 이제는 주머니에 들어온 돈을 쓸 차례다. 돈이야 어디 쓸 데가 없어서 못 쓰랴. 보리타작하고 모내기할 때 일꾼들 먹일 찬거리를 장만해야 하고, 식구들 옷가지며 신발도 남우세스러운 꼴은 면해야 한다. 아버지께서 자실 돼지고기를 좀 끊어야겠는데, 집에 있는 호미며 낫이며 괭이도 너무 닳아 뭉툭하다. 또 모처럼 장에 왔으니 ‘빠마’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을 본다는 것은 사는 일이 반 파는 일이 반

함께 왔던 동네 장꾼 동무들은 언제께 어디께서 만나 같이 돌아갈 약속을 정하고는 흩어져 각자의 일을 본다. 소금(매매되는 소의 가격)을 알아보러 우시장으로 가는 장동댁, 농자금 융자받은 것 이자 갚으러 조합으로 향하는 수양리댁, 자꾸 가슴이 메고 답답하다며 약방부터 찾는 은산댁….

시간을 아끼기 위해 먼저 미장원으로 가서 머리를 만 어머니는 수건을 쓴 채 나와 파마약 냄새를 풍기며 장을 보기 시작한다.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목청껏 호객하는 장사치와 이것저것 고르고 흥정하는 장꾼들 틈을 헤치고, 옷전에서 당신이 일할 때 입을 ‘몸뻬’와 식구들이 입을 ‘난닝구’ 몇 벌을 고른다. 신발전에서는 아버지 장화와 우리들 고무신을 골랐으며, 어물전의 고등어며 연쇄점에서 산 국수타래는 모내기 때 일꾼들에게 내놓을 것이다. 정육점에서 산 돼지고기는 비록 두 근뿐이고 그나마 비계가 반이지만, 어머니가 모처럼 큰맘을 먹었다는 물증이다.

 

 

휭휭하던 어머니의 발걸음이 문득 장터 한쪽 길가에 좌판도 없이 펼쳐진 대바구니며 ‘고무다라이’들 앞에서 무디어진다. 여남은 명이나 되는 놉의 못밥 내갈 큰 그릇이 마땅찮던 참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장돌뱅이건만 장사치가 반색하며 어머니를 맞는 건 마수가 좋았다는 것일까, 아직 마수걸이마저 못 했다는 것일까.

“무건 것 담어갖고 이고 댕길 것인디 으째 바구리가 신찬해(시원찮아) 보이요잉?”

“내말이요 아짐. 그라먼 다라이를 사야제, 바구리가 들으먼 섭하다고 해라우!”

한 푼이라도 깎을 요량에 혼잣말처럼 물건 타박부터 앞세우는 어머니에게나, 재주껏 바구니 대신 대야를 권하는 장사치에게나, 흥정이라는 것이 원래 속셈과 눈치의 치열한 교환이다. 안 사려는 듯 밑진다는 듯 깎아달라 못 판다 실랑이 끝에, 이윽고 셈을 치르고 장을 다 본 어머니는 다시 미장원으로 가서 파마한 머리를 마저 손질한다.

이즈음 해는 이미 중천을 달리는데 장터 여기저기에 구경거리가 펼쳐져 있다. 남정네들은 딱 한 수면 곧 외통수가 틀림없어 보이는 장기판의 유혹에 주머니 속의 돈을 가늠해 보고, 공터에 빙 둘러선 아낙과 노인네들은 약장수의 입담에 얼이 빠졌다. 약장수는 도대체 무슨 약을 팔기에 입에 침을 튀기다가도 애들은 가라고 눈치를 주는지…. 소를 팔고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길이 좁다고 억지 부리는 아저씨며, 들치기인지 날치기인지 돈가방을 잃고 길바닥에 누워버린 아주머니, 흥정이 끝내 싸움으로 번진 좌판도 장날이면 그려지는 풍경화이다.

챙기고 단속한 장짐을 머리에 인 어머니가 약속했던 곳으로 가면 동무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여든다. 국수 한 그릇 말아먹을 염도 없이, 조금만 기다리면 동네로 들어가는 버스가 뜨련만, 오후 나절 텃밭 마늘이라도 뽑으려면 부지런히 발을 놀려야 한다.

돌아가는 길에도 어머니를 비롯한 아주머니 장꾼들은 저마다 신산한 삶만큼 무거울 광주리나 대야를 머리에 이고 있다. 그래도 이십 리 길이 멀지 않은 것은, 서울 가서 버스 차장 한다던 누가 배불러 돌아왔다느니 품앗이 약속한 어떤 여편네는 일 닥쳐서 자빠져버렸다느니, 길이 끝나도록 함께할 동행이 있고 길이 끝나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이 있어서다.

 

쇠락한 시골 오일장…내 마음 속 풍경으로만 남았다

가난하고 남루한 삶이지만 세상이 다 그러그러한 모습인 것으로 알았기에 행과 불행의 경계마저 크게 괘념하지 않았던 시절, 독천에는 4일과 9일이면 어김없이 오일장이 섰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물산과 흥정이 오갔다.

하지만 지금 독천 오일장은 크게 쇠락했고, 대신 제법 큰 마트가 두어 개 들어서서 날마다 문을 열고 있다. 예전에는 장을 본다는 것이 반은 파는 일이요 반은 사는 일이었으나, 요즘은 무엇을 사러 가는 사람은 있어도 집의 것을 팔러 가는 사람은 드문 것도 커다란 변화다. 독천 중심가에 낙지 음식점들이 늘어서서 흥왕한 것 역시 달라진 모습의 하나이다.

 

 

하기야 그 시절 전교생 600여 명을 헤아리던 동네의 ‘국민학교’가 폐교된 지 오래이니, 시골 면 소재지의 오일장인들 견딜 수 있었으랴. 그래도 여전히 4일과 9일이면 내 마음 속에서는 오롯하니 독천 장이 선다.

(사진 제공 : 농민신문사)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