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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도 추운 줄 몰랐던 어린 시절 겨울 추억

몽당연필62 2009. 12. 20. 15:18

추워도 추운 줄 몰랐던 어린 시절 겨울 추억


돌이켜 생각하니 노동마저 감미롭구나


한겨울이다. 여러 날 전국이 혹독하게 추웠고, 지역에 따라서는 많은 눈도 내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빵빵하게 난방이 되는 집에서 반소매 셔츠나 반바지를 입고서 계절을 모른 채 지낸다. 이 아이들은 불과 삼사십 년 전쯤 아빠나 엄마의 어릴 적 겨울나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그땐 참 추웠지만, 결코 춥기만 한 겨울은 아니었다.


지금 사오십대 연령층이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농촌에 사는 농업국가였다. 그때는 요즘과 달리 농촌에 비닐하우스가 없거나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농사 기술도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겨울이면 농사일이 없고 매우 한가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때 찬바람 불고 눈 내리는 겨울이면 방 안에 틀어박혀 이불이나 뒤집어 쓴 채 겨울을 보내지는 않았다. 요즘 아이들보다 훨씬 씩씩하게 뛰놀며 겨울을 즐겼던 것이다. 하긴 컴퓨터나 게임기는커녕 마을에 텔레비전 있는 집이 한두 집 있을까말까 하고, 아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도 수두룩했던 시절이었으니 아이들의 놀이문화 자체가 지금과는 달랐을 수밖에.


춥고 눈 내리면 더 즐거운 겨울 놀이들

아이들은 추우면 추울수록 신이 났다. 논에 있는 물이 꽝꽝 얼면 썰매를 타느라 밥 먹는 것이 뒷전이었고, 남자아이들이 팽이를 많이 쳤다. 팽이는 마당에서보다 얼음판에서 훨씬 오래 돌았다.  

눈이 소복이 쌓이면 즐거움은 더욱 커졌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눈을 뭉치고 커다란 덩어리로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으며, 곳곳에서 눈싸움도 벌였다. 짓궂은 녀석들은 돌멩이를 넣은 눈 덩이를 던졌다가 피 보는 일도 있었고…. 언덕이나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대나무를 쪼개 만든 스키를 타며 씽씽 내달렸고, 스키 대신 급한 대로 비닐 포대를 깔고 미끄럼을 타는 아이들도 즐거움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러다 어른들이 나와 미끄럽다며 연탄재라도 뿌리면 얼마나 서운하던지.  

겨울에는 연을 날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방패연과 가오리연 등 여러 모양의 연이 꼬리를 흔들며 하늘로 오르면 마치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 기분이 상쾌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종이로 고리를 만들어 연줄을 통해 연까지 보내는 ‘편지’를 부쳤고, 대뜸 옆 친구의 연줄에 자신의 연줄을 걸어 연싸움도 벌였다.

그러면 썰매나 스키, 팽이, 연 따위는 어른들이 만들어주었던 것일까. 물론 어른이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아이들이 칼·낫·톱 등을 이용해 직접 만들었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았던 당시, 열 살 정도만 되면 누구나 어지간한 장난감은 만들 줄 알았다.

겨울날 바깥에서 노는 아이들의 즐거움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 불장난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늘 성냥을 지니고 다녔는데, 논둑이나 밭둑의 마른 풀에 불을 놓아 놀면서 얼었던 손과 발을 녹이곤 했다. 그런데 당시 옷이나 양말들은 작은 불티에도 어찌 그리도 쉽게 구멍이 뚫려버리든지! 아이들의 불놀이는 어른들도 눈을 감아주는 정월대보름에 절정을 이뤘다. 이날은 거의 모든 아이들이 불깡통을 돌리고 쥐불을 놓았던 것이다.  

빨갛게 익은 찔레 숭어리를 꺾어다 열매의 속을 파낸 뒤 청산가리를 넣고 밀봉해 밭에 꽂아두고는 꿩이 먹기를 기다리던 일,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국물도 주지 않을 거면서 토끼몰이를 시키던 일도 겨울의 추억이다.


차거나 뜨겁거나, 여전히 사랑받는 겨울 먹을거리들

겨울은 또 먹을거리가 많아서 즐거운 계절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일한 덕분에 모처럼 하얀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쌀밥을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땔감으로 불을 때서 밥을 짓고 방을 따뜻하게 한 집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빠뜨리지 않는 것이 고구마를 굽는 것이었다. 고구마가 익으면 노릇노릇한 속살이 얼마나 맛있는지, 형제가 여럿인 집에서는 고구마를 구워먹을 속셈으로 서로 아궁이에 불을 때겠다고 다툴 정도였다. 방 안에서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화로에 밤을 구우며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겨울에는 군고구마와 군밤처럼 따끈한 먹을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이 시릴 만큼 시원한 음료수도 있었다. 밥알과 함께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식혜, 곶감과 잣이 몸을 담근 수정과가 아이들의 입맛을 유혹하는가 하면, 동치미는 밤늦도록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는 어른들의 갈증을 달래주었다.

식혜와 수정과를 오늘날에도 많이 먹듯이, 동짓날의 팥죽과 설날의 떡국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우리의 전통 음식이다. 하지만 떡을 찍어 먹는 묽은 엿인 조청은 이제 찾아보기가 어렵다.

 

겨울이면 우리는 이렇게 놀고먹으며 모처럼 여유 있는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노동 없이 겨울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른들은 짚을 이용해 농사철에 쓸 새끼를 꼬고, 멍석과 가마니를 짜고, 소쿠리와 멱둥구미를 만들었다. 아이들도 거의 날마다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한 짐씩 마련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이들은 머리에 부스럼이 많이 나고, 몸에 이가 많이 기어다니고, 누런 콧물을 많이 흘렸으며, 까만 때가 앉은 손등은 트기도 잘했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살이가 특별히 힘들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요새 아이들은 다들 예쁘고 깔끔하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삼사십 년 전의 아이들만큼 행복할지, 아니 덜 불행할지는 의문이다. 컴퓨터 앞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이 아이들이 밤하늘에서 북극성과 오리온자리와 카시오페아자리를 본 적이 있기나 할까. 새벽에 일어나 변소에 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눈보다도 더 하얗게 쏟아지던 달빛이나, 후드득 별들이 쏟아져버릴 것 같은 카랑카랑한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나 할까. 놀이와 먹을 것과 노동마저도 감미롭게 되살아나는 겨울의 추억을 만들 수나 있을까….


/ 몽당연필 사진 농민신문사 자료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