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당숲, 사람과 신이 소통하는 공간

몽당연필62 2008. 8. 8. 10:01

당숲, 사람과 신이 소통하는 공간


사전적인 의미의 ‘숲’은 ‘수풀’의 줄임말로서 ‘나무가 무성하게 들어찬 곳’, ‘풀이나 덩굴, 나무 따위가 한데 엉킨 곳’을 가리킨다. 그러나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식물 외에도 미생물과 벌레, 곤충, 짐승, 새들의 서식처로서 그 의미가 확대된다. 의미와 어울리게 실제로 숲의 구성원들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공생과 경쟁을 하고 있다.


사람과 숲은 서로를 돌보는 상생의 관계

사람 또한 이 숲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들은 숲에서 땔감과 목재와 먹을거리를 얻고, 토사의 유출 등으로부터 보호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숲의 기능을 이해하면서 인위적으로 숲을 조성해 큰물이나 바람 막는 일을 맡기기도 했다.

최근 무분별한 개발과 도시화 등으로 숲이 줄어들면서 숲은 ‘자연’이나 ‘환경’, ‘휴양’ 등의 영역으로 그 의미를 강력하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숲을 파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숲을 보호하고 삭막한 도심에 새 숲을 조성하며 아파트 발코니에까지 작은 숲을 들이려고 애쓰는 것은 사람이 숲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사람도 숲에 돌려줄 것이 있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상생의 관계임을 깨달은 까닭이다.

숲은 이처럼 경제적, 자연적, 환경적인 관점에서 쉽게 인식되지만,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영험한 공간으로서 존재하기도 한다. 예전 여러 마을에 있었던 당숲 또는 서낭숲이 그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마을에는 서낭당과 함께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때로는 숲에서 가장 큰(또는 오래된) 나무를 당산나무로 삼고 그 옆에 서낭당을 두기도 했다. 이렇게 당산나무나 서낭당이 숲 속에 있을 경우 이 숲을 당숲이라 불렀다.

이러한 당숲이 일반 숲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사람들이 숲을 신성하게 여기며 보통 때는 출입을 삼간다는 점이다. 토지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을 모시는 숲이니 이를 대하는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이 조신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때문에 당숲에서는 땔감을 채취하거나 짐승 잡는 일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당숲이 바로 강원 원주시에 있는 ‘성황림(城隍林)’이다.

서낭당(성황당)이 있어 이름이 성황림인 이 숲은 신림면 성남2리 어귀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으며 총 면적이 312,993㎡인데, 치악산 자락에 정착해 살던 사람들이 당집을 만들고 치악산의 서낭신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며 온갖 정성으로 지켜온 당숲이다. 자연이 스스로 만든 숲이기에 연륜을 알 수 없고, 서낭당 또한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토지와 마을 지키는 서낭신 강림하는 당숲

성황림을 찾은 날, 철책으로 빙 둘려있는 숲이 장대비에 하염없이 젖어들고 있었다. 관리인의 안내로 철문에 걸린 자물쇠를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접어드는데, 가뜩이나 어두운 날씨에 숲이 하늘을 가려 불이라도 켜야 할 것 같았다. 성황림은 훼손을 막기 위해 평소 문을 잠가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을에 거주하는 관리인에게 연락하여 문을 열어주도록 해야 한다.

숲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50m나 들어갔을까, 왼편으로 나무에 금줄 쳐진 것이 보이면서 그 너머로 당집 하나가 나타난다. 숲의 여러 나무 가운데서도 유난히 큰 젓나무와 복자기나무를 양 옆에 거느린 서낭당이다. 금줄은 서낭당 처마에도 걸려 있다.

서낭당 문을 열어보니 바닥이 두세 평 넓이의 마루이고, 오른쪽 벽에 맞대 높이 50㎝ 정도, 너비 40㎝ 정도의 단이 놓여 있다. 그리고 단 위에 ‘상성황지신(上城隍之神)’이라는 신위와 초가 놓여있고, 신위 앞에는 오래 전에 올려 형태를 잃어가는 밥알, 떡, 밤, 대추, 곶감 등의 제수들이 보인다.

오래된 숲에는 전설이 있게 마련. 성황림에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전설 하나가 깃들었다. 옛날 성남리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소를 치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초파일(음력 4월 8일)과 중양(음력 9월 9일)에 서낭신께 치성을 드렸다. 토지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께 동네가 평안하고 부정이 없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마을 잔치를 열어 주민들이 함께 즐겼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그만 치성 드리는 것을 잊고 말았다. 그러자 건강하던 소들이 시름시름 앓다 자빠져 죽기 시작했다. 크게 놀란 사람들은 모두가 모여 건강한 소를 잡아 다시 치성을 드렸고, 그 뒤로는 소가 죽는 일 없이 농사도 잘 되었다고 한다.

 

성황림의 서낭제는 6․25전쟁 이후 경비가 없어 소 대신 돼지머리만 달랑 놓고 제를 지냈는가 하면, 한동안은 종교인들과의 갈등으로 그 명맥이 끊기기도 했다. 서낭제는 원주시의 지원으로 몇 해 전에 다시 시작되었는데 요즘에는 한 해에 한 번, 돼지 1마리를 잡아 올린다고 한다. 이렇듯 성황림은 사람과 신이 만나고 의사를 소통하는 신성한 장소이다. 숲은 신과 인간의 경계이면서 또한 서로 교통하는 공간인 것이다.


학술적·종교적 가치 높아 천연기념물로 보호

성황림 안에는 소나무․신갈나무․느릅나무․고로쇠나무․음나무 등 50여 종의 목본식물, 그리고 이와 비슷한 숫자의 풀들이 자라고 있다. 특히 서낭당 옆에 서 있는 젓나무(전나무의 다른 이름이며, 이 숲에서는 젓나무로 표기하여 이름표를 나무에 달아놓고 있다)는 높이가 29m, 가슴 높이의 지름이 1.3m에 이르러 이 숲이 오래 전부터 훼손되지 않고 보존돼 왔음을 말해준다. 숲 밖 양쪽으로는 내가 흘러 이들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수분을 공급하는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다.

성황림은 이처럼 온대지방을 대표할 만한 활엽수림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고 우리 조상들의 과거 종교관을 알 수 있는 민속자료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어 관광지가 아닌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목록에는 이 숲이 ‘원성 성남리의 성황림’으로 등록되어 있고, 관리 주체인 원주시청에서는 ‘신림면 성황림’이라 부른다. 문화재청 목록에 ‘원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1955년 원주군 원주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됨에 따라 나머지 지역을 원성군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962년 당시 신림면이 원성군에 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성군은 1989년 다시 원주군으로 개칭했고,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주시와 통합하여 현재의 도농통합시인 원주시가 되었다.

성황림에 다녀온 며칠 뒤, 숲 옆으로 큰 내가 흐르던 것이 떠올라 걱정스런 마음으로 관리인에게 전화를 해보니 마을에도 숲에도 별 피해가 없었단다. 주민들의 치성이 서낭신의 영험을 성남2리와 성황림에 깃들게 했던 것일까.


글 : 몽당연필 / 사진 : 최수연(월간 ‘전원생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