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철원, 전쟁의 상처까지도 소중히 보듬다

몽당연필62 2008. 6. 26. 12:56

철원, 전쟁의 상처까지도 소중히 보듬다


해마다 6월이면 다른 때보다 관심을 더 갖게 되고, 들으면 콧날부터 시큰해지는 이름 철원. 1100년쯤 전 한 나라의 도읍이기도 했던 철원은 국토 분단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서 전쟁의 아픔마저도 스스로 씻어버리는 고장이다.


한탄강은 하늘이 철원에 만들어 준 선물

철원은 아름답다. ‘강원도답지 않게’ 너른 들과 얌전한 산세 그리고 여러 유물과 유적도 그렇지만, 한탄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빚어놓은 비경은 이곳에 군사지역이 많음에도 왜 30년 가까운 1977년에 국민관광지가 조성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철원의 볼거리는 무엇보다 한탄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한탄강은 평강군 장암산에서 발원해 김화, 철원, 포천, 연천을 거치거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길이 134.5㎞의 하천. 이 강은 중류인 철원을 지나며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과 협곡을 선물해 놓았다.

 

           직탕 폭포

 

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폭포를 이룬 것으로 흔히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드는데, 한탄강은 규모는 이보다 훨씬 작지만 비슷한 모습의 폭포를 지니고 있으니 바로 직탕 폭포이다. 고석정에서 2㎞ 정도 위쪽에 있는 이 폭포는 폭 80m, 높이 3m로 수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제법 굉음과 함께 물보라를 일으켜 ‘한국의 나이아가라’라 불린다.

고석정은 철의 삼각 전적관 바로 뒤쪽 한탄강 계곡에 있는 정자. 신라 진평왕 때 처음 지어졌고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들러 머물렀다는 말이 있는데, 조선 명종 때의 의적 임꺽정이 활동했던 근거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고석정 길목인 철의 삼각 전적관 옆에는 의적 임꺽정 상이 세워져 있다. 현재의 고석정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1971년 재건한 것으로, 이곳에서 바로 눈앞의 한탄강을 바라보면 기암괴석과 함께 어우러진 물줄기가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한다. 더욱이 강 중앙에 섬처럼 솟아 한탄강 급류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10m 높이의 거대한 고석바위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까지 심어준다.

 

           고석정에서 바라본 한탄강 고석바위

 

고석정에서 하류 쪽으로 2㎞쯤 내려가면 한탄강 물줄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순담 계곡이 나온다. 순담은 조선 후기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관주라는 사람이 요양할 곳을 찾다가 아담한 산들이 거문고 형상을 하고 옥류가 흐르는 이곳에 와서 20평 정도의 연못을 판 뒤 충북 제천의 의림지에서 수련의 일종인 순채를 옮겨다 심고는 순담이라 부른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기묘한 벼랑과 바위가 많고 다른 계곡에서는 보기 어려운 하얀 모래밭이 천연적으로 형성되어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데, 특히 여름에는 가족 단위 휴양객은 물론 래프팅을 즐기는 동호회원들도 많이 찾아온다.


오해가 진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고장

이 아름다운 한탄강은 이름과 관련해서 커다란 오해를 받고 있다. ‘한국전쟁 때 다리가 끊겨 후퇴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탄하며 죽었기 때문에 한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오해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크다, 넓다, 높다는 뜻의 ‘한’과 여울, 강, 개의 뜻인 ‘탄’이 어우러진 멋진 이름이다.

이 강 위에 건설된 다리들 중에서도 비슷한 오해를 받는 녀석이 있다. 한탄강은 동송읍과 갈말읍 그리고 포천시 관인면을 이어주는 다리들을 대여섯 개 어깨 위에 걸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승일교라는 아치형 다리가 있다. 승일교는 동송읍과 갈말읍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북한이 1948년 건설을 시작했지만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된 것을 수복 후인 1958년 남한이 완공을 해 결과적으로 남과 북이 절반씩 건설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승일교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이름은 한탄강을 건너 북진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승일교

 

전쟁을 치렀던 역사가 이처럼 잘못 알려진 사실마저도 더 진실처럼 여겨지게 하는 철원은 지금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현장이자 또한 머리를 맞댄 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언젠가 철마는 다시 힘차게 달리겠지

철원의 기름지고 너른 들은 한국전쟁 때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의 한가운데에 들어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러한 ‘과거’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둘러쳐진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라는 철책 그리고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 등의 ‘현재’로 이어지며 해마다 6월이면 우리 역사의 상처로 되살아난다.

철의 삼각지대는 철원평야를 가운데에 두고 철원․김화․평강이 삼각으로 이어지는 지역. 김화가 철원에 편입되고 평강은 휴전선 너머에 있어 이제는 철원으로 대표되는 이곳에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현장이 곳곳에 남아있고, 이 현장들은 안보관광지로 개발되어 다시는 이 땅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장이 되고 있다.

 

 노동당사 잔해와 기둥의 총포 자국

 

 

동송읍 쪽에서 백마고지 전적지를 향해 가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옛 철원군 노동당사. 광복 후 소련식 공법으로 지은 이 건물은 한국전쟁 전에는 철원이 북한 땅에 속했기 때문에 반공인사 탄압과 주민 착취 장소로 이용되었는데, 폭격으로 골조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나 곳곳의 총포 자국이 전쟁 당시의 비극을 웅변해주는 듯하다.

철원읍 백마고지 전적지는 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 동안 벌어진 무려 12차례의 격전 끝에 승리한 백마고지 전투를 기념하고 이 전투에서 희생된 넋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이 전적지에는 위령비와 기념관, 전적비, 상승각(종각 겸 전망대) 등이 세워져 있으며 상승각에 올라서면 들판 건너 백마고지가 손에 잡힐 듯 실제로 보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선열들 앞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백마고지 위령비와 임꺽정 동상.

 

철의 삼각 전망대와 제2 땅굴, 승리 전망대 등을 둘러보려면 이곳들이 최전방이기 때문에 미리 고석정 옆에 있는 철의 삼각 전적관에 접수를 하고 간단한 안내를 받아야 한다. 또 관람 출발 시간도 하루 몇 차례뿐이고, 현장에서 사진을 찍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일부 제약이 따르기도 한다.

이 가운데 철의 삼각 전망대는 김일성고지, 피의 능선 등 북녘 땅이 한눈에 바라보여 안보관광 코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다. 특히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과 맞닿아 있어 긴장감이 감돈다. 이 전망대 앞에는 경원선 월정리 역사와 함께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부서진 열차의 잔해가 녹슬어 있는데, 그 곁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안내판이 조국 통일의 염원을 담은 채 서 있다.


영화로운 과거, 아픈 현재, 밝은 미래

철원은 한국전쟁 때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땅이었다. 특히 궁예는 이곳을 도읍으로 하는 태봉(후고려 또는 후고구려, 마진이라고도 함)이라는 나라를 세워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신라와 함께 후삼국을 형성하기도 했다. 철의 삼각 전망대 너머에 태봉국 도성 터가 있다고 하는데 비무장지대 안이라 직접 가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스스로 나라를 세워 분단의 길을 걸었으면서도 또한 스스로 통일을 지향했던 궁예. 남북 분단의 현장 철원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은 우리 역사의 아픈 도돌이표가 아닐는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

 

한편 근남면 복계산에 있는 층암절벽 매월대는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비분해 관직을 버리고 은거했다는 곳으로, 이 역시 우리의 아픈 역사와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 하겠다.

철원은 이처럼 왕도로서 영화로운 역사를 지녔고 분단의 현장으로서 아픔도 간직하고 있지만, 미래만큼은 매우 밝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고 상호간의 협력이 현실로 이뤄지면서 통일 한국의 중심지로서 우뚝 서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기대 때문이다.

여기에 한탄강, 전적지 등 풍부한 관광 자원과 비무장지대에서 흘러오는 깨끗한 물로 재배해 품질이 뛰어난 철원평야의 고품질 쌀도 철원의 미래를 밝혀주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철원은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한 곳. 새들은 때가 되면 겹겹이 둘러쳐진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들건만, 우리 사람들이 오가기에는 철책이 아직 너무 견고하다. 6월이 돌아올 때마다 상처가 덧나듯 국토 분단의 긴장감이 팽팽해지면서 자유와 통일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지만, 철원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전쟁의 아픔마저도 스스로 씻어버리는 고장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