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나도 사촌들과 ‘교분’이 별로네

몽당연필62 2008. 8. 1. 17:51

나도 사촌들과 ‘교분’이 별로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발생했다.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가 국회의원 후보 공천 명목으로 30억 원을 받았다가 구속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단 “김 여사와 김 여사의 큰아버지의 딸인 사촌언니는 교분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이 사건이 이 대통령 부부에게까지 비화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갑자기 ‘나는 사촌들과 얼마나 교분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가 6.25전쟁 때 단신 월남하셨으므로 친가 쪽 사촌은 없고, 외가 쪽으로 외사촌과 이종사촌들만 있다. 이들도 사촌임에는 틀림없으니, 나도 이참에 사촌들 얼굴 하나하나 떠올리며 교분 내역을 살펴봐야겠다.


먼저 이종으로는 딱 한 사람뿐인 이종사촌 형님. 50대 중반이며 개인택시를 하신다. 마지막으로 뵌 것이 지난 4월 외할머니 제사 때였다. 5월엔 형님의 아들이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찾아뵙지는 못하고 전화만 드려서 늠름한 아들 둬서 좋으시겠다고 실컷 부러워했다(난 아들이 없으니….). 이모님이 생존해계시니 형님보다는 어머니 같은 이모님과 통화를 더 자주한다.


외사촌으로는 큰외삼촌 쪽으로 세 명(남1, 여2), 작은외삼촌 쪽으로 두 명(남2), 이렇게 다섯이 있다(모두 손아래임). 큰외삼촌이 일찍 돌아가시고 외숙모가 재가를 하셨기 때문에 그쪽 외사촌들(현재 모두 30대임)과는 교분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외할머니 제사 때, 그놈들 결혼할 때, 애들 돌잔치 할 때는 얼굴 봤었다. 그런데 칠팔 년 전 한 놈이 사채를 썼다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살아가는 형편은 풍문으로 듣는다.


작은외삼촌 쪽 외사촌 중 큰놈은 현재 30대 초반인데, 좋은 회사 취직했다가 그만 두고 행정고시 보겠다고 공부 중이다. 역시 지난 4월 외할머니 제사 때 얼굴 본 게 마지막이다. 작은놈은 20대 후반으로 군복무 중이다. 지난 2월 군대갈 때 복무 잘 하라고 전화만 해줬다.


아내에게도 사촌들이 있다. 바로 며칠 전인 지난 주말, 아내 사촌들의 어머니(아내에게는 작은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문병을 다녀왔다. 아내의 사촌들은 명절에 처가에 가면 얼굴을 보게 된다.


이 정도면 나는 사촌들과 교분이 돈독한 것인지 소홀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아주 활발한 교분은 없다는 점이다. 하긴 사촌이라야 쥐뿔도 없는 무지렁이들끼리 무슨 교분이 필요하랴. 잊고 지내다 명절이나 제사 때, 누가 아프거나 결혼을 할 때 겨우 얼굴을 보거나 연락을 취해 안부를 물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한 외사촌 동생에게 마음속에 빚을 지고 있다. 칠팔 년 전 사채를 썼다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는 그 동생 말이다. 그때 다급한 목소리로 “500만 원만 빌려달라”고 애원했었는데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만약 나에게 권력이 있었다면, 아니 권력까지는 아니어도 경제적으로 좀 여유만 있었어도 그까짓 500만 원 때문에 동생을 외면하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 일가에는 이름을 팔아 단돈 500만 원 마련할 권력자 하나 없구나...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