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까치밥의 가르침

몽당연필62 2007. 12. 7. 16:19

 

외가에는 장독대 곁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서리가 내릴 무렵 감이 빨갛게 익으면 나무에 오르거나 담을 타고 감을 따는 것이 커다란 재미였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가지에 매달린 감은 할머니가 끝을 조금 쪼개 나무토막을 괴어 틈이 벌어지도록 만든 간짓대로 따곤 하셨다.

감이 달린 가는 가지를 틈새에 끼우고 간짓대를 돌리면 가지는 쉽게 꺾였다.

할머니는 올망졸망한 외손자들의 손에 감을 쥐어주시며, 감나무는 가지를 꺾어줘야 새 가지가 돋아 해거리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가장 높은 데에 매달린 서너 개는 따지 않고 꼭 남겨두셨다.

“저것은 까치밥이란다.”

 

할머니가 떠나시고 우리끼리 감을 따게 되었을 때, 간짓대가 닿지 않는 것도 아닌데 우리도 응당 몇 개는 까치 몫으로 남겨두었다.

사람 먹을 것도 부족했던 시절, 곤궁했기에 오히려 우리는 날짐승의 주림까지도 헤아리는 여유와 아량을 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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