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으악새 우는 사연

몽당연필62 2007. 11. 12. 09:14

 

 

‘아아~ 으악새 슬피 우우니 가으으을이이인가아아아요~’

어려서, 아버지께서 장만하신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머리맡에 놓고 무던히도 열심히 들었다.

당시 프로그램으로 밤 시간에 방송되는 ‘세월따라 노래따라’라는 것이 있어,

등에 업은 전지가 정작 제 몸보다 더 컸던 그 라디오는 흘러간 노래들을 불러재꼈다.

 

 

어린 마음에도 그 노래들 가운데 이맘때쯤이면 유난히 자주 나오는 고(故) 고복수 씨의 노래 ‘짝사랑’이 좋았다.

처연한 곡조와 애절한 음색 때문이었을까, 으악새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을까,

세상사의 깊이를 알 턱이 없는 아이임에도 노래가 나오면 천연덕스럽게 따라 부르곤 했다.

 

 

으악새가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라 억새의 방언임을 안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예전에는 억새가 땔감으로 안성맞춤이어서 사람들이 앞 다퉈 베어가 버렸으나,

요즘엔 베어가는 사람이 없으니 언덕이나 야산 곳곳마다 억새가 그야말로 지천이다.

 

 

깊어가는 가을, 으악새는 낮이면 꽃을 하얗게 말리고 밤이면 소슬바람에 잎을 비벼 운다.

세월이 흘렀어도 으악새는 그렇게 울고 있다.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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