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더하기 추억

신을 말한다 / ② 위치는 낮고 위상은 높다

몽당연필62 2007. 11. 16. 14:08

신을 말한다 ②

위치는 낮고 위상은 높다


 

신을 만들어 신는 이유는 인체의 가장 아랫부분인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가장 낮은 곳에 놓여 사람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은 신이 타고난 운명이다. 하지만 신은 사람의 발을 떠나는 순간, 의미를 내포하고 함축하여 사회적 함의를 전달하는 장치로서 제법 높은 위상을 갖게 된다.


짝은 짝이로되 격 맞는 짝이어야

무릇 세상은 짝을 이룰 때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생산성 또한 높아지는 것이 많다. 젓가락은 두 개여야 쓸모가 커지고, 냄비는 뚜껑이 있어야 제격이며, 남편은 아내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자리이다.

신에는 반드시 짝이 있다. 그런데 신에서 짝은 단순히 보완재로서의 기능을 넘어 유유상종의 의미까지 더해진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은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배필은 있다’는 뜻이지만, 짚신의 짝은 또한 짚신이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짝을 찾는 선남선녀들이여, 되도록이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을 고르라. 그러나 결심이 굳다면 과감히 도전하라. 한쪽에 짚신 다른 한쪽에 나막신을 신었다고 해서 나들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듯, 살아가면서 겪게 될 이런저런 불편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거꾸로 신은 고무신, 마음인들 편할까

물론 우스갯소리이지만, 유격 훈련에 특공 무술로 단련된 씩씩하고 늠름한 군인들에게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으니, 바로 사회에 남겨진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것이다. 여자, 거기에 고무신, 그것도 하필 왜 거꾸로일까.

고무신은 신축성이 뛰어나 앞뒤를 바꿔도 발이 들어가며, 좌우가 바뀌어도 신을 수 있는 신이다. 더구나 여자 고무신은 왼짝과 오른짝의 구분조차 없다. 그러니 여자 입장에서 급하면 고무신을 거꾸로라도 신고 허둥지둥 뛸밖에.

오매불망 한 여자만을 그리며 짬밥과 뺑뺑이를 견뎌내고 워커에 광을 내 모처럼 가슴 설레며 나온 휴가, 그런데 그 여자는 이미 다른 남자 품에 안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여자 역시 고무신 거꾸로 신은 발만큼이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으리라.


남겨진 신은 죽음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

투신하는 사람은 대부분 신을 벗어놓는다. 한적한 곳에서 두 짝이 고이 남겨진 신을 발견하면 자살의 섬뜩함이 먼저 느껴져 버린다.

심리학자들은 자살하는 사람들이 신을 벗어놓는 이유로 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죽음을 알린다고 해석한다. 벗어놓은 신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인 셈이다.

 

 

신은 주로 밖에서 신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밖에다 신을 벗어놓았다는 것은 농작업을 하는 등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주인에게 분명 변고가 생겼다는 의미가 된다. 함부로 신을 벗어놓지 마라. 당신이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있는데, 그 신의 주인이 당신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당신이 이미 저세상 사람일 수도 있다.


기능도 다양하여라, 도구로서의 신

신은 발을 떠나면서 하나의 도구가 된다. 아니, 신겨져 있는 채로도 신은 도구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호신 도구. 여성에게 치한 퇴치 요령을 제공하는 많은 정보들이 하이힐 굽으로 치한의 면상을 힘껏 후려치거나 발등을 찍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고무신이나 슬리퍼 창으로 뺨을 맞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이힐 굽 공격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탭댄스를 출 때는 악기가 되고, 딱딱한 바닥이나 계단에서는 멋쟁이 숙녀도 미운 ‘딸깍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신이다.

어쨌든 신은 도구로 사용될 때보다는 역시 사람의 발에 신겨져 있고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때 가장 아름답고 신답다.


자기 과시 혹은 자기 만족의 대상물

깨끗하고 좋은 신을 신은 사람이 지저분한 신을 신은 사람보다 좋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이 비싼 명품 신을 신거나, 구두를 깨끗이 닦으며, 명품을 흉내 낸 짝퉁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남자들 사이에 키높이 구두라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여자들이야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굽 높은 신을 신어왔지만, 이제는 남자들도 키가 작으면 구두를 이용해 ‘높이’에 대한 만족감을 성취하는 시대다.

 

 

1986년 필리핀 민주화 운동으로 대통령 마르코스가 하야했을 때 대통령궁에서 그의 부인 이멜다의 구두가 2000여 켤레나 발견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멜다는 구두 수집을 통해 자기 과시 또는 자기 만족을 했던 게 아닐까.


때로는 벗어서 능률 오르고 감동 준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진행되는 도중에 의지를 다질 때 ‘신발끈을 질끈 동여맨다’고 하는데, 때로는 끈을 풀고 신을 벗는 것이 오히려 능률을 높이고 타인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신 벗고 쫓아가도 못 따라간다’는 말은 그래도 신을 벗고 쫓아가면 신고 쫓아가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따라갈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아무래도 옛날 짚신이나 나막신, 고무신 따위는 쉽게 벗겨지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을 터이다.

경제 위기에 따라 IMF체제를 겪던 시절인 1998년, 우리 국민은 박세리의 맨발을 기억한다. 박세리는 이때 미국 최고 권위의 여자 골프 대회인 US오픈에서 연못에 빠진 공을 양말까지 벗고 들어가 쳐냈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실의에 빠진 고국의 국민에게 엄청난 감동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신은 이렇게 때로는 제자리를 비켜주어서 감동을 키울 줄도 안다.


신은 예술의 소재…사람 자체를 의미하기도

신은 예술 작품에서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소설가 윤흥길은 산업 사회에서 소외된 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의 자존심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작품으로 빚어냈고, 모두가 아는 동화 ‘신데렐라’에서는 신이 신분 상승의 장치로 사용되었다.

신을 소재로 한 노래도 많다. 어린이들은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하고 새 신을 신은 기쁨을 노래하고(새 신),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하며 오빠를 그리워한다(오빠 생각). 오래 전에 가수 남일해는 여자를 사모하며 애타는 마음을 담은 ‘빨간 구두 아가씨’를 불렀고, 요즘 가수 김혜연은 오래 정들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내용의 ‘유리 구두’를 부르고 있다.

 

 

사람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신과 함께 지낸다. 어떤 사람의 발자취를 담은 기록을 이력(履歷)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이(履)’는 신을 뜻한다. 이력서는 곧 어떤 사람이 신을 신고 걸어온 역사의 기록 아닌가. 비록 우리 몸의 가장 낮은 위치에서 짓눌리고 있지만, 신의 위상만은 그것을 신고 있는 사람 자체로까지 높아지는 것이다. (사진 제공 : 최수연/월간 ‘전원생활’ 기자)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