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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그리운 이에게 나를 부친다

몽당연필62 2007. 11. 9. 18:17

 

 편지  그리운 이에게 나를 부친다


 

편지가 감성을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진중함 때문일 것이다. 글씨 한 자에 또박또박 심혈을 기울이고, 단어 한 개를 선택하는 데에 혼을 실으며, 봉투의 우표까지도 신경 써서 반듯하게 붙인다. 한 장의 편지에는 얼마나 감미롭고 황홀한 언사들이 함께 하는가.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에게는 기다림과 설렘도 빠뜨릴 수 없는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속도와 무게로는 가늠할 수 없는 정성과 진중함

‘엄마아빠저잘지내고있습니다~지금은한라산등반하려고가는중이에요^^*내일뵈요’

띄어쓰기가 아예 없고 이모티콘이 삽입된 이 문장은 고등학생인 큰애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서 보내왔던 핸드폰 문자 메시지이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로의 안위를 확인할 수 있으니.

그런데 기분이 좀 그렇다. 집 밖에 있는 애가 이렇게 소식을 전해오면 반갑고 마음이 놓이기는 한데, 쉽고 빠르고 너무나 편리한 이 소통 방식이 어쩐지 가볍고 영 미덥지가 않다. 편지에 익숙했던 세월이 길었기에 ‘안부를 전하는 방법은 곧 편지’라는 인식이 유전자처럼 내 정신의 어디에 박혀있는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편지를 쓰지도 받지도 않는 게으름에 대한 자성일까.

큰애 나이 때 중소도시에서 자취하며 학교를 다녔던 내가 부모님의 안부를 여쭙고 나의 별 탈 없음을 전하는 유일한 수단은 편지였다. 1970년대 후반, 시골집에 전화도 없는 시절이었다. 편지는 언제나 ‘부모님 전 상서’로 시작되었고, 부모님의 안녕과 동네 아재들의 평안 그리고 농사와 가축에 별 탈 없는지를 여쭈었으며, ‘저는 몸 성히 학업에 열중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사뢰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드릴 말씀을 적고 끝 인사와 날짜, ‘둘째 올림’이라 적으면 편지지 한 장이 거의 채워지곤 했다. 편지 말미에는 습관처럼 추신을 달았는데, 정작 편지의 핵심은 추신이었다. 아무 날 집에 갈 터이니 납부금과 연탄값 등으로 쓸 돈을 준비해 두십사 하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이렇게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더러는 함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우편이나 인편을 통해 글로 소통하는 수단이 곧 편지인 것이다. 요즘이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핸드폰 버튼 한 번 누르면 바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전화하기가 마땅치 않으면 컴퓨터로 이메일을 보내 안부와 궁금증을 풀 수 있지만, 예전엔 궁금한 일이 있어도 직접 달려가거나 풍문으로 듣지 않는 한 편지 말고는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감미롭고 황홀한 언사들…역사와 문화에 영향 주기도

이처럼 편지가 실생활과 밀접하다 보니, 한 통의 편지가 개인사는 물론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열한 살짜리 소년으로부터 수염을 길러보라는 편지를 받고 정말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몇 년 전 독일에서는 발송한 지 무려 286년 만에 도착한 편지가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할 때 쓴 편지들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안을 관리하는 요령은 물론 술 마시는 법, 닭 기르는 법까지도 가르쳤다. 또 어니언스가 부른 ‘편지’와 김세화가 부른 ‘눈물로 쓴 편지’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지금도 좋아하는 애창곡이다. 박신양과 최진실이 주연했던 영화 ‘편지’는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편지가 소통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다해가던 시기에 잠시나마 편지쓰기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편지가 이처럼 감성을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편지에 담긴 ‘소식’의 중요성을 뛰어넘는 정성 때문일 것이다. 한 장의 편지를 쓰기 위해서 여러 장의 편지지를 버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더욱이 받을 사람이 연인이라면 편지에는 얼마나 감미롭고 황홀한 언사들이 함께 담길 것인가. 글씨 한 자에 또박또박 심혈을 기울이고, 단어 한 개를 선택하는 데도 혼을 싣는다.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에게는 기다림과 설렘도 빠뜨릴 수 없는 즐거움이자 커다란 행복이다. 현재 중년 정도의 연령층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펜팔의 추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잡지마다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의 주소를 게재하는 난이 따로 있었을 만큼 펜팔이 이성과 소통할 수 있는 커다란 통로가 되었다.

펜팔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군대에 가기 얼마 전 ‘새농민’이라는 잡지에 투고한 글이 실려 몇 명의 이성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중 마음에 드는 한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으니 결과적으로 펜팔을 하게 된 셈이었다. 서로 조심스럽게 ‘미지의 친구에게’로 시작했던 편지가 쌓여가면서 편하게 말을 텄고, 두어 달 지났을 무렵 사진을 교환하기로 했다. 내 사진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친구의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체부 올 시간만 되면 얼마나 가슴이 설레던지…. 이윽고 편지가 와서 봉투를 열 때는 손이 다 떨리기까지 했다.

그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소식을 끊기까지 서너 해 정도 우리는 만나기는커녕 목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정말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우체부 아저씨가 “이렇게 열심히 편지를 배달해준 집은 평생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펜팔뿐만 아니라 대처로 나간 동네 친구, 학교 동창들과의 편지도 하루가 멀다하고 오갔으니 아마도 그 아저씨 말은 농담이 아니었으리라. 그 편지들은 결혼을 하면서 한 줌의 재로 변해버렸지만, 봉투의 우표 하나도 반듯하게 붙이던 정성과 답장을 받던 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추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온과 사랑을 온전하게 담아 전달해 줄 편지를 쓰자

요즘 청소년과 젊은이들도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이나 우체국을 찾기는 하는 걸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흔한 일도 아닐 성싶다. 안부 편지는 전화나 이메일이, 펜팔은 채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매일 들여다보는 우리 집 우편함에도 편지는 보이지 않고 공과금 고지서나 학원 광고 전단지, 계절에 따라서는 청첩장이 내용물의 주류를 이룬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안부나 소식을 전하는 방편으로서의 편지는 이제 수명을 다한 것일까.

 

 

회사 앞에 빨간 우체통이 있다. 아니,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야 알게 되었다. 회사에 출근하면 이메일을 검색하고 보내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에 편지 부칠 일이 없으니 우체통이 눈에 띄지도 않고 마음에 담기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당연히 요즘 우표 한 장에 얼마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것이 미덕인 시대이니, 쓰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고 부치기도 번거로운 편지가 경쟁력을 잃는 것이야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한 통의 전화나 몇 줄의 이메일이 얼마나 사색의 기회를 주고 창의력을 발휘하게 해줄 것인가. 존경하는 이에 대한 경외,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진중함을 편지만큼 간명하게 담아주는 소통 도구는 없는 것이다.

오늘, 열여덟 해 만에 다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비록 느리게 배달되고 무게 또한 하잘것없지만, 그 편지는 속도와 무게의 차원을 넘어 내 체온과 사랑의 크기를 온전하게 담아 전달해줄 것이다.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은, 혹시 답장이 늦어지더라도 오래도록 누릴 수 있어 좋으리라.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