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하는 소리

어른을 위한 풍자 동화 '양파와 대나무'

몽당연필62 2007. 11. 8. 12:11

옛날 옛날 전혀 오래되지 않은 무쟈게 가까운 옛날, 한 나라 땅에 양파와 대나무 등 여러 식물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를 다스리던 왕이 나이가 들어 물러날 때가 되자, 왕이 되고 싶었던 양파는 새로운 왕을 뽑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양파는 먼저 밭두둑에 물길을 뚫어 운하를 건설함으로써 양파를 멀리까지 쉽게 운송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리고 멋진 열설도 하였습니다.

"식물 여러분! 맛있는 양파보다는 못생긴 양파가 영양분도 많고 더 맛있습니다!"

"등록금이 없어 공부를 할 수 없는 가난한 식물들은 장학금을 받으면 큰 식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양파는 연설을 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양파의 인기는 날로 치솟았습니다. 특히 양파는 껍질을 아무리 까도 계속해서 양파가 나오기 때문에 다른 식물들이 대단히 재미있어 하며 좋아했습니다.

'음. 이제 시험만 치르면 내가 왕이 되겠구나.'

자신감이 생긴 양파는 멀리 쌀나라 왕과 회담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양파와 쌀나라 왕이 회담을 한다는 소문은 곧 나라 안에 퍼졌습니다. 하지만 쌀나라 왕은 양파가 마늘이나 고추 따위의 동의를 받고 회담을 해야 하는데도 혼자서 회담을 추진한 것을 알고는 매우 화를 내며 양파와의 단독 회담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와 쌀나라는 평등하지가 못해. 대책을 세워야겠어.'

양파는 쌀나라 왕에게서 당한 수모를 씻기 위해 식물들의 호칭을 평등하게 하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나라 안에서는 볍씨, 호박씨, 보리씨, 사과씨, 복숭아씨, 고추씨 하는 식으로 모든 식물의 호칭에는 '씨'를 붙여 부르게 되었습니다.

"뭣이라!! 이름 뒤에 다 '씨'를 붙여 평등한 사회를 구현한다고??" 

그런데 씨로  번식하지 않는 다른 식물들은 이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감자와 마늘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씨를 붙이면 어색하고 사리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그래서 양파는 할 수 없이 그들만은 씨를 앞에 붙여 씨감자와 씨마늘로 부르기로 하여 반발을 잠재웠습니다. 이 정책은 다른 동물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씨암탉'과 '씨받이'라는 말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양파의 인기와 행동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는 식물이 있었습니다.

'아니, 못생긴 양파 주제에 왕이 되겠다고 설치다니...' 

바로 대나무였습니다. 대나무는 자신이 키가 크고 사계절 내내 푸르며 때로는 양파를 담아 보관하는 바구니의 재료가 되는데도 양파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정말 서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나무도 왕이 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대나무는 사실 예전에 두 번이나 왕 시험을 치렀다가 떨어진 적이 있어 눈치를 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왕을 뽑기로 한 날이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와 마음이 다급했습니다.

 

"대나무님을 왕으로! 대나무님을 용상으로!"

마침 대나무를 좋아하는 식물들이 어서 다시 왕 시험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며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왕이 되지 못하면 대나무가 너무 늙어서 다시는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왕 시험에 나서기로 한 대나무는 양파에게 외쳤습니다.

"다마네기야! 너는 항상 대파와 실파, 쪽파가 네 목숨을 노리고 있어서 안전하지가 않다. 그러니 겨울에도 푸를 만큼 튼튼한 내가 만약에 대비해 왕 시험에 응시하겠다!"

이 말을 들은 양파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이제 시험만 치르면 왕 자리에 앉을 수 있는데, 다시는 왕 시험에 응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대나무가 딴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파는 어느날 새벽 대나무를 찾아갔습니다. 대나무를 설득해 왕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대나무는 양파를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멀리서 소리쳤습니다.

"다마네기 너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이 너무 병들어서 왕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차지한 땅뙈기가 너무 넓어. 그러니 나에게 왕 자리를 양보하렴!"

이 소리를 들은 양파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지않고 대나무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대쪽 너는 뭐가 잘났냐? 지난 번 네가 두 번이나 왕 시험을 볼 때 우리가 응시원서 사라고 돈을 차떼기로 실어다 줬는데도 떨어져놓고! 그리고 대나무들은 자라면 베어서 창으로 깎아 나라를 지켜야 하는데, 네가 키운 죽순들은 왜 죽창으로 안 만들었지?"

대나무는 양파가 자신의 가슴 아픈 과거를 들추자 그만 흥분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양파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악을 썼습니다.

"비료 주는 법과 농약 뿌리는 원칙을 모르고, 쟁기질하는 질서도 지키지 않는 주제에 감히!"

그러고는 갑자기 자신의 대나무 줄기를 쪼개 날카로운 창으로 만들어서 양파를 콕콕 찌르며 못살게 굴기 시작했습니다. 양파는 너무 아파서 펄쩍펄쩍 뛰며 매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양파의 매운맛이 퍼지자 대나무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라 안의 식물들은 그만 양파 편과 대나무 편으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양파를 좋아하는 식물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왕 시험에 응시하려는 대나무를 헐뜯었고, 대나무를 좋아하는 식물들은 양파가 너무 많이 썩어서 왕이 되더라도 도저히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며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싸우는 사이에 왕을 뽑는 시험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웃 동네에서도 별로 인기는 없지만 조용한 가운데 왕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에 정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섣달 열아흐렛날 계속>

 

/잡문신문 연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