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친숙과 낯섦 사이

몽당연필62 2019. 3. 29. 05:11

 

* 통으로든 가루로든 열매를 거의 날마다 먹고, 잎은 장아찌 또는 나물로 먹고, 줄기는 마른 뒤 땔감으로 쓰고. 내가 이렇게 잘 알고 꽃 너를 수없이 봐왔음에도 문득 낯설어서 몸이 곧추세워지더란 말이지.

 

친숙과 낯섦 사이

 

아마 100번도 더 봤을 것이므로

너를 정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리도 낯설다니,

나는 너를 잘 모르는 게 맞아.

내가 널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무에 있었겠어.

흔하니 대충 봐도 친숙하다고 느꼈겠지.

 

하기야

30년을 함께 산 마누라도

자기 얼굴 제대로 안 쳐다본다고 더러 타박해.

당신은 날 너무 몰라 하며 핀잔주고.

마주보면 지척이지만 등지면 지구 한 바퀴 거리이니

한 이불 덮는다 하여 친숙하기만 하려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주 보니 친숙하다는 생각은 방심이야.

그 끝에 낯섦이 똬리를 틀고 있고!

그러면 그대와 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잘 아는 사이일까?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