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폐교된 고향 초등학교는 망촛대에 묻혀가고

몽당연필62 2013. 9. 22. 10:12

추석 때 고향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를 찾아보았다. 40여년 전 6년 동안 다니며 몸과 마음을 키웠던 모교이다.

그런데 정문부터가 출입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자란 플라타너스 가지가 녹슬어가는 교문을 덮었고, 전나무 울타리였던 교문 오른쪽은 휑하니 뚫렸다.

 

운동장으로 들어서니 어른 키보다도 더 큰 망촛대들이 온가득이다. 달리기를 하고 축구와 기마전을 하던 운동장이 온통 잡초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망촛대들은 마치 전교생이 모여서 조회를 하던 것처럼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다. 더러는 강아지풀도 무더기로 자라 황량감을 더해준다. 

 

 

우리나라 농촌학교가 거의 그랬던 것처럼, 1970년대에 학생수가 500명을 넘었던 이 초등학교도 급격한 이농현상 및 산아제한 등으로 학생수가 감소했고, 분교 격하와 폐교 처분을 피해가지 못했다. 한때는 사물놀이 전수관으로 활용되며 관리가 되었는데, 그나마 몇해 전 전수관이 철수하면서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 

 

팔을 벌리듯 옆으로 나란히 서서 축구경기의 골문이 되어주던 플라타너스 두 그루도 가지가 제멋대로 자라 땅에 닿고 줄기를 가린다.

슛을 잘했던 신덕리 철홍아,

빼어난 문지기였던 은곡리 육철아,

공보다도 고무신이 훨씬 멀리 날아갔던 석포리 만안아,

공이 전나무 울타리 너머 논으로 날아가면 개구멍으로 통과해 주워오던 매월리 대현아,

달리기를 잘해 드리블도 훌륭했던 미교리 삼철아!

우리의 꿈이 이렇게 묻혀가고 있구나. 우리의 소년시절이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구나….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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