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하는 소리

나는 결혼하자마자 '영감'으로 불렸다

몽당연필62 2009. 4. 27. 13:40

아는 분의 블로그에 인사차 갔다가  그 분의 부인께서 남겼다는 메모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다. '영감탱!'으로 시작되는 그 이야기는 부인이 외출하면서 남편의 식사를 챙겨놓은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초로의 부부가 나누는 사랑을 재미있게 담고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문득 우리 부부의 서로에 대한 호칭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아내를 대개 '여보'라고 부르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ㅇㅇ엄마'라고 한다. 또한 아내는 나를 부를 때 '여보' 아니면 '영감', 'ㅇㅇ아빠'라 한다. '영감'이 분위기에 따라서는 '엉감'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내는 신혼 때부터 나를 여보나 영감으로 불렀다. 연애가 아닌 중매결혼이었기에 '자기'라는 호칭은 사용해본 적이 없고, 서로 합의하에(?) 곧장 여보라는 호칭을 사용했던 것인데, 어느날 보니 난 영감도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영감'으로 불릴 때면 아내는 당연히(?) '마누라'가 되었다.

 

영감(令監)이라는 호칭은 원래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부르던 것으로, 나이 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나이 든 남자를 대접하여 부를 때도 영감이라고 한다. 어쨌든 지체높기는커녕 조그만 회사의 월급쟁이인 내가 신혼 때부터 영감이라 불렸으니, 이 호칭 속에는 남편의 앞길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아내의 소망이 담겼을 터이다.

 

친구나 주위 이웃들을 보면 부부간의 호칭이 참 다양하다.여러 부부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천연덕스럽게 '여보!'라고 해서 누구의 여보를 찾는 것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ㅇㅇ엄마(아빠)'라는 호칭도 자주 듣는다. '철수야' '영희야'처럼 아이 이름으로 배우자를 부르는 경우도 흔하다. 적당히 콧소리를 넣어 '자기~!' 하는 친구도 있다.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어이!' 하거나,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ㅇㅇ씨!'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더러 민망한 상황도 있다. 남편이 아내를 '야!'로 부르는 경우이다. 어떻게 아내를 동네 애 부르듯 '야!'라는 단음절로 부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내는 결혼하자마자 나를 '여보' 또는 '영감'으로 불렀다.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을 어떻게 불러주시는지?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