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고드름이 길게 달렸으니 풍년이구나

몽당연필62 2009. 1. 18. 19:35

 

 

고드름이 길게 달렸으니 풍년이구나

 

어느덧 겨울 한복판,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쌓였다. 산에도, 들에도, 지붕에도. 지붕에 쌓인 눈은 조금씩 녹으면서 고드름을 키우고 있다. 다들 하늘을 향해 높이 자라 키 재기 하는데, 혼자서 땅을 향해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어렸을 때, 아버지는 초가집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보며 말씀하셨다. “고드름이 길게 달렸으니 올해는 틀림없이 풍년이구나.” 그때는 영문을 알지 못하여 아버지가 무슨 점쟁이라도 되냐며 까르르 웃었다.

고드름과 풍흉의 상관관계를 깨달은 때는 훨씬 나중이다. 고드름이 긴 것은 당연히 눈이 많이 온 것이고, 소복이 쌓인 눈은 보리와 마늘을 덮어 보온작용을 하며, 눈이 녹아서는 메마른 대지를 적실 것이니 영농이 순조롭지 않겠는가.

시골을 떠나 도시로 와서 슬래브 양옥과 아파트에 살면서는 고드름 보기가 어려워졌다. 어쩌다 고드름을 보게 되면, 발을 엮거나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을 생각에 앞서 농사의 풍흉부터 점친다. 지금 눈앞의 고드름을 보면서도 나는 자신 있게 점괘를 내놓는다. “고드름이 긴 것을 보니 올해 농사는 대풍이겠다.”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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