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청양, 푸르고 볕 좋은 고장에 빨강을 더한다

몽당연필62 2008. 4. 3. 11:40

청양, 푸르고 볕 좋은 고장에 빨강을 더한다


충청남도 중심부에 자리 잡아 약 480㎢의 면적에 1읍 9면으로 이뤄진 청양(靑陽)군은 이름 그대로 산야가 푸르고 볕이 좋은 고장이다. 그런데 청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른색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빨강도 느낄 수 있다. 맑은 공기와 밝은 태양 그리고 깨끗한 물을 머금어 자라고 익은 고추와 구기자가 지역 특산품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3만 4000여 군민에게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청양의 진산 칠갑산, 대웅전이 두 개인 장곡사

청양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칠갑산이다. 가수 주병선의 노래 ‘칠갑산’으로 더욱 유명해진 칠갑산은 해발 561m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닌데, 산세가 비교적 부드러우면서도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녔고 숲도 울창한 청양의 진산이다. 칠갑산은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아흔아홉골·칠갑산장·천장호·장곡사·정혜사·자연휴양림·도림사지 등의 명소를 품에 안고 있다.

 

 (칠갑산 줄기와 천장호)

 

정산면 고갯마루에 있는 칠갑산휴게소에 이르러 한숨을 돌린 뒤 바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맑고 잔잔한 산중호수 천장호가 나타난다. 천장호는 칠갑산 자락 골짜기를 막은 저수지로, 산그늘을 거울처럼 드리운 수면이 그지없이 맑다. 이곳은 산책 코스로 또 낚시터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가을에는 단풍도 곱다고 한다.

천장호에서 청양읍 방면으로 길을 재촉하니 대치면에 이르러 칠갑지라는 저수지가 나오고 그 옆으로 칠갑산 자연휴양림이 보인다. 이곳 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을 이뤄 삼림욕장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지닌 것은 물론이고, 숙박 및 놀이시설도 잘 갖춰져 아늑한 쉼터가 되고 있다.

칠갑산휴게소와 천장호에서 칠갑산을 반 바퀴 쯤 돈 지점에 있는 대치면 장곡리의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창건된 천년 고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대웅전이 두 개인 절이며, 탑이 없는 것도 특징이란다. 장곡사는 유구한 역사에 어울리게 미륵불 괘불탱(彌勒佛掛佛幀)과 철조약사여래좌상 부 석조대좌(鐵造藥師如來坐像附石造臺座) 등 2점의 국보를 비롯해 많은 문화재를 보유했다.

 

 (장곡사와 장승공원)

 

장곡사 초입에 조성된 장승공원도 발길을 붙든다. 높이 10m가 넘는 대형 장승을 비롯해 양반·농부·도깨비 등 여러 형상의 장승들이 수백 기나 세워져 있고,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외국의 장승들도 눈길을 끈다. 공원에는 또 장승체험관이 있어 장승을 직접 깎는 체험을 해볼 수 있으며, 해마다 4월에는 장승문화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장곡사 인근의 지천구곡은 물굽이가 기묘하고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하천이다. 칠갑산에서 발원한 어을하천이 청양 곳곳을 적시며 흐르다 금강으로 합류하는데, 비단폭 같은 물굽이가 아홉 번 휘돌면서 병풍바위 등 절경을 빚어놓은 것이다. 특히 까치내유원지 부근은 물이 맑고 흐름도 완만하여 여름철 물놀이에 적합한 곳으로 꼽힌다.

 

 (지천구곡과 병풍바위)

 

한편 칠갑지에서 장승공원 인근까지의 도로는 한국도로교통협회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하나로 선정되었을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봄이 되면 길 양쪽에 심어진 벚나무로 벚꽃터널이 생기고, 벚꽃이 질 때는 마치 흰눈이 흩날리는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지키고 받아들인 사람들의 정신이 흐르는 땅

아쉬운 사실이지만, 청양은 누구나 알만한 역사적 인물을 많이 배출하지 못했고 특별한 문화재도 많지는 않다. 그렇다고 하여 어찌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부터 이 땅과 사람들을 지키려던 의기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려던 선각(先覺)의 고운 정신마저 흐르지 않겠는가.

청양읍에 있는 우산성은 높이 3~7m, 폭 6m, 길이 965m의 석성이다. 청양읍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우산 정상과 언저리 지형을 따라 자연석으로 쌓았는데, 지금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백제 때의 축성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인 것이다. 우산성을 둘러보고 육각정에 올라 아기자기한 청양읍내와 들녘을 내려다보노라면, 자신들의 삶터를 지키기 위해 돌을 져 나르고 성을 쌓았을 옛 사람들의 모습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우산성, 육각정, 최양업 신부 생가 터, 줄무덤) 


한편 화성면 농암리 다락골의 줄무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보다 신심(信心)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의 흔적이다.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때 희생된 순교자들의 무덤인 것이다. 당시 홍주감영이나 공주 황새바위에서 많은 이름 없는 신자들이 순교했는데, 이들을 모셔와 한 분묘에 여러 사람을 줄줄이 묻었기 때문에 줄무덤 또는 줄묘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다락골 초입은 우리 역사상 김대건·최방제와 더불어 최초의 천주교 유학생이며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의 출생지여서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는 성지이기도 하다. 1821년 이곳에서 태어난 최양업은 세례명이 토마스로, 1836년 프랑스 사람 모방 신부에게 발탁되어 마카오에 건너가 신학교를 졸업했다. 1849년 사제 서품을 받아 김대건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되었으며, 귀국 후 제천의 가톨릭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12년간 전교 활동을 하며 교리 번역과 국내의 가톨릭교 사료 수집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1861년 영남지방의 사목활동을 마치고 상경하던 도중 과로 등으로 경북 문경에서 병사했다.

화성면 구재리에는 조선 영·정조 때의 명신인 채재공(1720~1799)의 영정을 모신 사당 상의사(尙義祠)가 있다. 채재공은 정조의 탕평책을 앞장서서 추진했고, 북학파(北學派)라 불리는 박제가와 이덕무 등을 중국에 데려가 선진 문물을 접하게 했으며, 이가환과 정약용의 정치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정은 64세일 때 도화서(圖畵署) 화원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인데, 관리가 조정에서 입는 붉은 조복을 입었으며 홀(笏)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상의사와 구층석탑)

 

청양군의 서쪽 끝에 있는 줄무덤과 상의사를 둘러보고 동쪽 끝에 있는 모덕사로 가려고 청양읍을 지나 정산면 서정리에 이르자 국도변 논 한가운데에 여러 층으로 된 웬 석탑이 보인다. 보물 제18호인 서정리 구층석탑이다. 이 지역에는 백곡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탑 이외에 절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더구나 탑이 논에 서 있으니 그 모습이 더욱 이채롭다. 구층석탑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한데,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의 석탑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목면 송암리에 있는 모덕사(慕德祠)는 조선 말엽의 대학자이며 의병대장인 면암 최익현(1833~1906)의 항일투쟁과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14년 창건한 사당이다. 이곳에는 선생의 영정 및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모덕사) 

 

최익현은 경기도 포천 사람으로, 1868년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발행에 따르는 재정의 파탄 등을 들어 흥선대원군의 실정(失政)을 상소하여 관직을 삭탈당했다. 이후 일본과의 통상조약과 단발령에 격렬하게 반대했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 의병운동을 촉구하며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았다. 그러나 순창에서 패하여 쓰시마 섬에 유배돼 이듬해 순절했다. 모덕사라는 이름은 선생의 덕을 흠모한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모덕사는 경내가 넓고 바깥 연못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또 지척에 우목낚시터가 있어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청양의 색깔을 다양하게 하는 고추와 구기자

충청남도 중심부에 자리 잡은 청양은 아담하고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약 480㎢의 면적에 1읍 9면으로 이뤄졌으며 3만 4000여 명의 군민이 살고 있다. 청양은 이름 그대로 산야가 푸르고(靑) 볕이 좋은(陽) 고장이다. 칠갑산이 푸른 것은 물론이며 들녘과 호수, 하천도 맑고 짙푸르다.

그런데 청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른색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빨강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맑은 공기와 밝은 태양 그리고 깨끗한 물을 머금어 자라고 익은 고추와 구기자가 지역 특산품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고추와 구기자는 청양을 대표하는 농산물이며 청양 사람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특히 고추의 경우, 우리나라에 고추 명산지가 많지만 지역 이름을 품종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청양고추가 유일하다.

청양고추는 부식질이 많고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에서 재배되며 연간 2400t가량 생산된다. 매운 고추의 대명사로서, 과피가 두꺼워 가루가 많이 생산되고 향이 강해 다른 지역의 고추가 청양고추로 둔갑해 판매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될 정도이다.

 

 (청양 특산품 고추와 구기자)

 

강장제와 해열제 등 한약재로 많이 사용되는 구기자는 동아시아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청양과 전남 진도가 대표적인 주산지이다. 최대 생산지인 청양에서는 1500여 농가가 연간 400여t의 구기자를 생산한다. 또 대치면 광대리 칠갑지 인근에는 구기자 타운도 조성하고 있다.

청양은 이러한 고추와 구기자를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농가소득으로 연결하기 위해 해마다 8월 말~9월 초 쯤에 청양고추·구기자축제를 열고 있다. 고추와 구기자가 익을 무렵이면 청양이 푸른색에서 빨간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것은 물론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