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예천, 단술이 샘솟는 고장

몽당연필62 2008. 4. 2. 15:44

예천, 단술이 샘솟는 고장


예천, 이름이 참 좋다. ‘단술(醴)이 솟는 샘(泉)’이라는 의미 아닌가. 이런저런 자료를 들춰보니 예천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때 수주(水酒)라 했던 데서 유래했으며, 물맛이 달아 감천甘泉이라 불리는 지역도 있단다. 지도를 펼쳐보면 낙동강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하천들이 예천 땅 곳곳을 적시며 흐르고,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온천도 있다. 예천은 지명으로 보나 자연으로 보나 물이 좋은 고장임에 틀림없다.

 

 

(회룡포)


경북 예천군은 1읍 11면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져 있으며 661㎢의 면적에 4만 9000여 명이 살고 있다. 북쪽에 소백산맥이 둘러쳐져 있고, 남쪽에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흐르며 내성천·한천·기천 등의 지류를 받아들인다. 쌀·사과·한우 등을 특산물로 꼽는 농업이 발달했는데, 아름다운 풍광이 알려지면서 관광산업도 점차 발달하고 있다.


양궁의 고장과 육지속의 섬 아닌 섬 회룡포

스포츠, 특히 양궁 종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예천과 관련해 ‘김진호’라는 이름부터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비록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예천여고에 재학 중이던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오늘날 한국 양궁의 초석을 놓았던 그 김진호 말이다(김진호의 올림픽 최고 성적은 1984년 LA 올림픽 때의 동메달이며,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

 

신궁 김진호를 배출한 예천군은 그의 위업을 기념하고 양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95년 예천읍 청복리에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을 개설했다. 약 8만㎡(2만 4000평)의 부지에 예선경기장과 본선경기장을 따로 갖추고 일반인 대상의 양궁체험장까지 마련한 세계 최대 규모의 양궁 전용 경기장인 이곳에서는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양궁경기가 열렸으며 한국 양궁의 메카로서 양궁 저변 확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예천의 지명에 대해 알아보자. 예천(醴泉), 이름이 참 좋다. ‘단술이 솟는 샘’이라는 의미 아닌가. 이런저런 자료를 들춰보니 예천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때 수주(水酒)라 했던 데서 유래했으며, 물맛이 달아 감천(甘泉)이라 불리는 지역도 있단다. 지도를 펼쳐보면 낙동강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하천들이 예천 땅 곳곳을 적시며 흐르고,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온천도 있다. 예천은 지명으로 보나 자연으로 보나 물이 좋은 고장임에 틀림없다.

특히 서남쪽인 용궁면·지보면·풍양면 일대에서는 내성천과 기천의 풍부한 물이 이리저리 휘돌다 낙동강에 합류하면서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냈으니 회룡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회룡포는 용궁면 대은리에 속하는 땅덩이로, 내성천 건너 지보면 비룡산의 회룡대라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그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동그란 땅덩이 하나가 내성천 물줄기에 갇혀 있는데, 멀리 한쪽 땅만 호박 꼭지처럼 끊어지지 않고 간신히 이어져 있어 흙 몇 삽만 떠내면 곧바로 섬이 되어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회룡포는 자동차나 도보로 출입할 수 있지만 회룡대가 있는 지보면 향석리에서 일명 ‘뿅뿅다리’라 불리는 임시 다리(작은 철기둥을 세우고 건설공사장에서 볼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놓아 만들었다)를 건너며 발밑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뿅뿅다리)                                                          (삼강주막)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주막도 굽이져 흐르는 낙동강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삼강주막은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에 합쳐지는 지점의 강변에 있던 조선시대 전통 주막을 최근 복원한 것으로, 과거 행인과 보부상들의 숙식처였으며 시인묵객들도 찾아와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막걸리 몇 사발을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 주막 바로 뒤편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본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갖 근심도 물결 따라 함께 흘러가버리는 듯하다.


향교와 서원 많고 천년 고찰 용문사는 보물이 6점

예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물 맑고 인정 많은 충효의 고장’이라고 자랑한다. 여기서 충효의 고장이라고 하는 것은 향교와 서원이 많은 데서 오는 자부심인지도 모르겠다.

용궁면 향석리에는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건립해 공자를 비롯한 27위의 성현을 모신 용궁향교가 있고, 예천읍 백전리에는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건립해 25위의 성현을 모신 예천향교가 있다. 또 서원으로는 약포 정탁을 봉향한 도정서원(호명면 황지리), 맹암 김명렬을 받드는 신천서원(예천읍 왕신리), 서하 임춘 등을 봉향한 옥천서원(감천면 덕율리) 등이 있다.

향교나 서원이 지금이야 기능을 거의 잃어 문화재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들이 성현과 고매한 선비를 기리는 발길로 붐볐을 터이니 예천이 충효의 고장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용궁향교)                                                            (가오실공원) 

 

용궁향교를 둘러보고 용문사로 향하는 길, 개포면 가곡리에 이르니 마을 앞에 가오실 공원이라는 아담한 공원이 있다. 자그마한 호수 한가운데에 섬 하나가 있고 거기에는 제법 큰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서 있다. 맑은 물에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는데,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잎을 내면 완성될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상상된다. 도시든 농촌이든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이런 쉼터가 곳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용문면 상금곡리에 도착해 길을 찾는데 용문중학교 뒤편으로 우람한 소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보인다. 금당실 마을의 수해와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금당실송림이다. 약 2만㎡의 면적에 수백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풍광이 빼어난 금당실송림은 학교와 마을에 인접해 학생들의 야외 수업 및 주민들의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다.

 

(금당실송림)                                                                                    (초간정) 

 

용문사로 가는 길목에는 들러볼 곳이 또 하나 있으니 죽림리의 초간정이다. 초간정은 개울이 감고 도는 암벽 위에 자리 잡은 정자로, 백과사전류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 선생(1534∼1591년)이 조선 선조 15년(1582년)에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라고 한다.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등 몇 차례의 병화로 불타버렸는데 현재의 건물은 선생의 후손들이 1870년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 초간정은 주변 정비를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며 여름께 마무리가 된다니 피서를 겸해 찾아보면 좋을 성싶다.

이윽고 내지리에 있는 용문사에 도착했다.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두운대사가 창건한 용문사는 보물이 6점이나 있는 천년 고찰이다. 특히 맞배지붕의 균형미를 보여주는 대장전(보물 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년)에 초건한 목조 건물로, 그 안에는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보물 684호)가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1좌씩 설치되어 있다. 또 목불좌상은 대추나무에 조각한 것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용문사) 

 

용문사에는 절 이름이 정해진 내력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삼한 통합의 큰 뜻을 품고 두운대사를 방문하고자 동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바위 위에서 쌍용이 나타나 절로 가는 길을 인도하므로 태조는 산 이름을 용문산, 절 이름을 용문사라 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에서 건강과 환경이 중요한 테마가 되면서 곤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곤충은 친환경 농업에 활용되면서 경제적 부가가치도 창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리면 고항리에 있는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는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의 역할이 더욱 기대된다.

이 연구소에서는 약용과 애완 및 교육용, 관상용 등의 곤충을 연구하고 사육하면서 곤충 체험과 보급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건립한 곤충생태체험관은 영상과 표본 등 자료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호박벌·장수풍뎅이·왕사슴벌레 등 여러 종류의 살아 움직이는 곤충들도 직접 살펴볼 수 있어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좋은 학습장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곤충바이오엑스포가 열려 산업자원으로서 곤충의 가치를 조명하기도 했다.

 

 (예천곤충생태체험관)


세금 내는 나무 석송령, 감천의 의미 지닌 예천온천

예천(醴泉)이라는 지명이 특이하고 물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려니와, 더욱이 물맛이 달아 감천(甘泉)이라 불리는 지역도 있다는 것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예천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본 곳은 바로 감천면 일대였다.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 주관측실 망원경)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 관측실 외부 전경)

 

감천면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덕율리에 있는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천문대)이다. 2004년 문을 연 이 천문대는 천문 관측 등 별과 우주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으로서 관측실과 야외 공원 등을 갖췄는데, 반사경 지름이 508㎜에 이르는 주관측실의 망원경 등 각종 장비를 이용해 태양과 별·성운·성단·은하를 관측할 수 있다. 이곳에는 숙박시설이 있어 밤에는 천문우주과학 연수와 체험 등 우주여행을 하고 낮에는 인근의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혹시 우리나라에 땅을 가져 세금을 내는 부자 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 천향리 석평마을에 있는 석송령(石松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석송령은 높이 10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 4.2m, 줄기의 폭 32m(이는 동서 방향의 폭이며, 남북 방향의 폭은 22m이다), 그늘 면적 1,000㎡(약 300평)에 이르는 큰 소나무로서 나이는 600여 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이다.

 

(석송령)

 

석송령이 땅을 갖게 된 연유는 1927년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란 사람이 영험이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토지 5,259㎡를 상속하여 등기까지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천군청 문화관광과에 문의하니 이 나무는 연간 8,800원의 재산세를 내고 있다고 한다(실제로는 마을 주민들이 회비로 내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석송령을 신목으로 보호하면서 정월대보름에 주민들의 단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올리고 있다.

석송령이 있는 천향리 인근 관현리에는 예천온천이 있다. 2000년 개장한 예천온천은 지하 800m 이상에서 용출되는 원천수를 100% 사용하는데, 수질이 부드러워서 청량감을 주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여 특히 여성의 미용에 아주 좋다고 한다. 또 피로회복과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신경통 등에도 효험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관현리와 천향리 일대는 대규모 종합휴양온천관광단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예천온천)

 

예천군 감천면에 있는 온천을 보니 문득 단술과 단물이 솟는 샘의 의미를 알겠다. 술맛과 물맛이 정말 입에 달아서 예천이며 감천이겠는가. 흐르고 샘솟는 물이 건강에 좋으며 더구나 경제적으로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곧 단술이요 단물일 터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