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태안, 서해안 굴곡이 만든 국토의 배꼽

몽당연필62 2007. 11. 9. 14:56

우리나라 땅 모습이 서쪽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이라면, 서해로 돌출한 태안반도는 호랑이의 배꼽쯤에 해당한다. 배꼽은 포유동물의 태아가 모체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던 탯줄의 흔적이니, 이곳에 자리한 충남 태안군은 생명의 근원적인 모습을 간직한 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태안은 뭍과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경관이 더없이 수려하거니와, 이곳에서 나는 농산물과 수산물 또한 뛰어난 품질의 먹을거리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태안(泰安)은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고장이다. 이 이름은 고려 충렬왕 24년(1298)에 생겼으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준말로서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하다’는 의미를 지녔다. 태안 역시 ‘태평하고 안락하다’는 뜻이므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할 만하다. 태안은 700여 년 동안 독립된 군으로 유지되어 왔으나 1914년 일제에 의해 서산시에 합쳐졌다가 1989년 다시 군으로 떨어져 나왔다. 2읍 6면의 행정구역에 6만 명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애불의 효시 태안마애삼존불, 작은 사막 신두리 해안사구

태안군은 들이 넓고 군데군데 산이 솟았으나 그다지 높지는 않다. 태안읍 백화산이 그중 높은 산에 드는데 높이가 겨우 284m에 불과하다. 백화산은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서해바다를 끼고 있어 바라보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많고, 정상에는 고려 때 축성된 백화산성이 있다.

태안에 이르러 먼저 백화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태을암을 찾았다. 이곳에 국보 제307호인 태안마애삼존불이 있기 때문이다. 태을암으로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자동차가 다니기에 전혀 불편이 없었다. 태을암 경내는 중창불사가 한창이며, 마애삼존불도 최근에 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었다.

태안마애삼존불은 6~7세기 무렵 백제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높이 5.3m, 너비 5.4m의 커다란 바위에 양각되어 있다. 우리나라 마애불의 효시로서, 대개의 삼존불이 중앙에 여래를 모시고 좌우에 보살을 배치하는 1여래 2보살 형식인데 비해 이 삼존불은 보살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여래를 배치한 1보살 2여래의 특이한 형식이라고 한다.

 

 

백화산 기슭에서 태안읍과 멀리 바라보이는 서해바다 경치를 감상하고 산을 내려와 이번에는 원북면 신두리 해안사구로 향했다. 사구(砂丘)는 말 그대로 모래로 된 구릉. 신두리 해안사구도 해안선을 따라 모래가 쌓여 이뤄진 길이 3.4㎞, 너비 500m~1.3㎞의 낮은 구릉이다. 신두리 해안에는 모랫벌이 길게 드리워져 있어, 이 모래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해풍을 타고 날아와 쌓이고 쌓이면서 마치 사막지대처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모래 언덕을 형성한 것이다.

사구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종류의 식물에 가려 언뜻 보면 황량한 벌판 같지만 그 밑은 틀림없는 고운 모래밭이다. 특히 풀이 없는 겨울에는 마치 사하라 사막과 같은 모래 언덕이 드러나고, 바람이 만들어 놓은 물결 모양의 모래 무늬도 볼 수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이 해안사구에는 해당화·갯완두·억새 등 다양한 식물과 금개구리 등 희귀한 동물이 서식해 생태적·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530.8㎞ 해안선에 드리워진 해수욕장과 항·포구

태안은 반도인데다 해안의 굴곡이 심하고 크고 작은 섬도 120여 개나 있어 해안선의 길이가 무려 530.8㎞나 된다. 더구나 해안선이 단순히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30여 개의 해수욕장과 울창한 송림 등 비경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태안군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는 소원면의 만리포해수욕장을 들 수 있겠다. ‘똑딱선 기적 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로 시작되는 고(故) 박경원 씨의 노래 ‘만리포 사랑’을 탄생시킨 바로 그 해수욕장이다. 만리포해수욕장은 대천해수욕장·변산해수욕장과 함께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꼽히는데, 백사장 길이가 약 3㎞, 폭이 약 250m 이상이며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의 해수욕장으로 사랑 받는다. 해수욕장 초입에는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세워져 눈길을 끈다.

 

 

 

만리포에서 북쪽으로는 3~4㎞ 정도의 간격을 두고 천리포해수욕장과 백리포해수욕장이 이어진다. 그 위로 십리포와 일리포도 있다니 이름만으로도 여간 재미있지가 않다. 이들 해수욕장 외에 남면에는 몽산포와 청포대해수욕장이 유명하고, 안면도에는 욕장 길이만 3.8㎞에 이르는 안면읍 삼봉해수욕장을 비롯해 아예 서쪽 해안 전체가 해수욕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해수욕장이 있다.

 

 

해안에 있는 것이 어디 해수욕장뿐이겠는가. 여객선과 어선 그리고 화물선이 들고 나는 항구와 포구도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곳곳에 들어앉았다. 태안군 북쪽 끝인 이원면 만대항을 비롯해 원북면 학암포, 소원면 모항항과 통개항, 근흥면 안흥항, 남면 몽산포, 안면읍 방포항, 그리고 안면도 남쪽 끝인 고남면 영목항에 이르기까지, 여러 항구와 포구에서는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정에 취하고 싱싱한 해산물 맛에 취하며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게 된다.

태안의 항구와 포구 어느 곳에서나 농어·우럭·낙지 등 회, 바삭바삭한 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와 대하 등을 맛볼 수 있는데 이들은 바다와 갯벌 그리고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준 천혜의 선물이라 할 것이다.


곳곳에 송림 울창한 안면도는 거대한 휴양 공간

육지인 남면과 안면도 사이에 놓인 연륙교를 건너 안면도에 들어섰다.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는 원래는 섬이 아니었으나, 조선 인조 때 남면과 안면도 사이의 좁은 길목을 파고 바다를 연결함으로써 섬이 되었다고 한다. 남면과 안면도 북단에 현재 안면대교를 비롯한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앞으로 안면도 남쪽에서 원산도를 거쳐 보령시 대천항과 연결되는 다리도 건설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안면도는 교통이 한층 편리해져 관광객 유치가 더욱 쉬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면읍과 고남면으로 구성된 안면도는 물론 지금도 빼어난 관광지이며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휴양 공간이다. 곳곳에 송림이 울창하고, 특히 서쪽 해안에는 해수욕장이 즐비하며 해산물도 다양하게 잡힌다. 안면도 초입에 백사장항이 있는데, 마침 그곳에서 대하축제가 벌어져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이곳 대하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안면도를 여행하노라면 무엇보다 먼저 곧고 붉은빛을 띠는 줄기의 소나무숲이 눈에 띈다. 또 안면읍 승언리에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국내 유일의 소나무 단순림인 자연휴양림으로 들어서면 시원스레 쭉쭉 뻗어오른 소나무들이 풍기는 솔향기에 몸과 마음이 함께 맑아진다. 휴양림 안에는 산림전시관이 있어 목재 생산 과정과 목재의 용도, 산림의 효용가치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안면도의 소나무숲 전체 면적은 3500㏊이고, 이 가운데 수령 100년 내외 135㏊의 소나무숲이 자연휴양림으로 조성되었다.

 

 

자연휴양림 인근의 꽃지해안공원은 2002년 국제 꽃 박람회가 열렸던 곳으로, 꽃 박람회장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조성한 테마 파크. 계절에 맞는 꽃을 심었고 축구장·족구장·배구장 등 체육 시설과 야영장 등을 설치해 누구나 편히 쉴 수 있게 했다. 해안공원과 꽃지해수욕장이 지척이며, 특히 해안공원 앞 바다에는 애절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할미·할아비바위가 솟아있다. 이 바위들은 밀물 때는 바다에 뜬 각각의 조그마한 섬이 되지만, 썰물 때는 땅이 드러나 연결되며 걸어서 가볼 수 있다.

한편 안면도 남단과 가까운 고남면 고남리에는 2002년 개관한 패총박물관이 있어 선인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선사시대 토기와 석기, 장신구, 생활용품 등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마늘, 콩, 달래, 생강, 농산물은 모두가 명품이다

태안은 높은 산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농업이 발달했으며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해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벼농사 위주에서 벗어나 마늘·콩·생강·달래 등이 태안의 농특산물로 각광받고 있다.

태안의 마늘은 육쪽마늘이다. 이 지역 마늘은 기후와 토양이 마늘 재배에 적합해 독특한 맛과 향을 낼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이 적어 종자마늘로도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마늘통이 단단하고 병해충이 적어 저장성도 높다. 콩도 빼놓을 수 없는 소득작물. 원북면 일대를 지나면 제법 넓은 콩밭 지대가 펼쳐지는데, 최근에는 한 식품업체와 청두콩을 계약재배 하기로 해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원이 마련되기도 했다. 특히 태안은 전국 콩 종자의 92%를 공급하는 콩 채종 단지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 육쪽마늘과 콩 일부는 원북농협이 마늘장아찌와 청국가루로 가공해 판매하기도 한다.

 

 

봄철 입맛을 달래주는 달래도 태안에서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무려 반년 동안에 걸쳐 생산돼 ‘원북 달래’라는 브랜드로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른다. 원북면 반계리에는 30년 전 야생하는 달래의 종구를 채취해 하우스에서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여 지난해에 세운 달래 원조마을 기념비도 있으니, 이곳 사람들의 달래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생강은 600㏊에서 연간 6500t 가량 생산되는데, 이는 전국 생산량의 약 20%에 해당한다. 태안의 농산물은 마늘, 콩, 달래, 생강 등 하나하나가 곧 명품인 것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