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글 쓰기, 부탁하기는 쉬워도 부탁받은 사람은 괴롭다(1/2)

몽당연필62 2008. 1. 7. 08:54

글 좀 쓴다고 알려지면서 남모르는 스트레스가 생겼다. 그것은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공짜 대필 부탁이다. 청년 때도 직장 선배 아들의 웅변 원고를 써주는 등 허드렛일이 많았는데, 15년 전 작가로 데뷔하면서는 아예 윗분의 '스피치 라이터'가 되다시피 했다. 어지간한 사람들의 부탁은 서운한 소리 들어가면서까지 거절을 했는데도, 정해진 업무 외에 해야할 일인 윗분의 연설문 대필은 나를 한가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물론 내가 처한 상황이나 인간관계 혹은 모질지 못한 성격 때문에 떠맡은 대필이지만, 생각해보니 안팎으로 참 많은 그리고 다양한 대필을 했다. 회장님의 신년사, 사장님의 각종 '말씀 자료', 선거에 나선 분의 연설문, 홈페이지를 개설한 분의 초기화면에 내걸 인사말, 이런저런 행사의 축사나 격려사, 개인적인 편지, 신문 칼럼, 주례사... 이런 글들에 원고료를 모두 챙겨 받았다면 내 생활은 훨씬 윤택해졌을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속상했던 대필은 지방의회 선거에 나선 고향 선배의 부탁으로 쓰게 된 선거 연설문이다. 아니, 자기 연설문 하나 제 손으로 쓰지 못하는 주제에 군민을 위해 봉사하는 군의회 의원이 되겠다고? 그것까진 좋다고 치자. 오늘 퇴근시간 다 돼서 부탁하면서 내일 아침까지 해달라고?? 어쨌든 나는 씩씩거리며 밤을 새워 원고를 써줬고, 며칠 후 실시된 선거에서 선배는 떨어짐으로써 고생한 보람마저 느끼지 못했다.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거의 대부분이 줄거리(하다못해 요점이라도)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디에 사용할 것이라는 말만 툭 던져놓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써달라고 한다. 시간도 많이 주지 않는다. 오늘 오후에 부탁하면서 내일 아침까지, 금요일 퇴근시간에 전화해서는 월요일까지 시한을 주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들은 나도 잠을 자야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안온하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버튼만 누르면 커피 튀어나오듯 글이 튀어나오는 자판기가 아닌데 말이다.

 

대필 부탁을 받는 과정에서 나를 극도로 열받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자넨 전문가니까 대충 좀 써줘봐."라는 말이다. 대충 쓰라니? 작가, 그들 표현대로 전문가는 자신이 쓴 글에 자존심을 건다. 문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가수에게 노래 한 곡 대충 불러봐, 화가에게 그림 한 점 대충 그려봐, 서예가에게 글씨 몇 자 대충 써봐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서인가?

 

사람들은 예술의 여러 장르 가운데 유난히 문학하는 사람들의 공력은 싸게 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글이 노래나 그림보다 쉽게 접할 수 있고 쓰는 사람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서예가의 글씨 몇 자에 수십만 원을 내놓으면서도 소설가의 연설문은 거저 써주기를 바라는 것이나, 칠순잔치에서 창을 하는 사람에게 거금을 지불하면서도 바쁜 시간 쪼개 축사를 써준 작가에게는 애당초 원고료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사법고시 합격보다 더 어렵다는 중앙 일간지의 공모를 통해 당당하게 등단한 소설가이며, 우리나라 최대 문인 단체의 정식 회원이다. 나에게 연설문 등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글 쓰는 실력이 뛰어나니 쉽게 쓸 수 있을 거라는 칭찬(?)과 함께 부탁도 쉽게 해버린다. 대부분 직장에서 나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 있는 그들의, 부탁을 가장한 강압에 나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 2/2로 이어집니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