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어느 선배가 남긴 명예퇴직의 변

몽당연필62 2008. 1. 4. 11:15

요즘은 기업체의 인사철다. 승진과 이동, 명예퇴직 등이 이뤄지는 시기라는 이야기다. 다른 부서에 계시지만 내가 잘 아는 어느 선배님도 연말에 명예퇴직을 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입사해 무려 38년 8개월(군대 복무 기간 포함)간 달았던 회사 배지를 반납한 것이다.

 

그 선배님이 회사 사이트에 '물러갑니다'라는 제목으로 퇴직 인사를 올려놓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의 등불과 같은 분이었기에, 선배님의 퇴직 인사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입사에서 퇴직까지의 회고와 함께 후배 직원들에 대한 당부의 말도 담겨 있었다.

 

여러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이 '배운 것이 적었기에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채찍질을 스스로 해왔으며, 녹만 축내는 선배가 되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분은 실제로 입사 후에 학업을 계속 하셨고, 승진도 빨랐으며, 회사의 요직에 근무하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끝내 임원에 오르지는 못했다.

 

'현장에 뛰어들어 부딪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더라', '이 부서 저 부서 옮겨다니며 근무한 것이 장돌뱅이였구나 싶지만 부끄러워하지는 않겠다. 나를 필요로 해서 그 자리에 있었고, 월급 도둑은 아니었다는 평가만 있다면 혼자라도 웃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글을 읽고 선배님께 전화를 했다. 아침을 지나 낮으로 가는 10시 무렵인데, 선배님은 주무시다 전화를 받았던 모양인지 목소리에 잠결이 역력했다. 그동안 고생하셨고, 이렇게 낮잠도 주무시면서 몸과 마음을 좀 편하게 하시라는 위로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선배님은 차츰 내 기억에서 흐릿해질 것이고 후배들에게도 잊혀지게 되리라.

 

나도 언젠가는 명예퇴직이든 정년퇴직이든 의원해직이든 이 직장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후배들에게 어떤 인사말을 남기게 될까. '월급만 축내고 자리만 차지한 못난 선배는 아니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이 그렇게 나를 평가하고 인정해줄까.

 

또 다른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람은 뒷모습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인데, 누구나 면전에서는 좋은 이야기만 하지만, 헤어질 때는 뒤통수에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으니 평소 업무나 처신을 잘 하라는 의미였다. 내가 지금 이 회사를 떠난다면 남은 사람들은 내 뒤에서 손가락질을 할는지, 박수를 칠는지(떠나주는 게 고마워서 치는 박수 말고...).

 

한 분 두 분 떠나가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정말 뒷모습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떠날 때까지는 아직 많은 세월이 남았음에도, 그때 후배들에게 남길 인사말이 자꾸 구상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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