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이 많은 나락을 언제 담으려 하나니

몽당연필62 2008. 10. 8. 14:36

 

이 많은 나락을 언제 담으려 하나니


애써 탈곡한 나락도 잘 말려야 수매(收買)에서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기에

볕 좋은 날 아침 일찍 동네 공터를 욕심껏 차지하고 나락을 널었다.

닭을 쫓고 새를 망보며 젓기도 여러 차례, 나락은 햇볕과 바람으로 적당하게 말라가고 있다.

 

하지만 햇볕은 추분을 지나면서 ‘딸을 내보내도 좋을 만큼’ 엷어지고 짧아졌다.

나락은 공기가 이슬을 머금기 시작하는 저녁나절 전에 다시 포대에 담거나 곳간에 쟁여야 한다.

나락을 널 때는 좁던 공터가 그늘에 쫓기기 시작하면 왜 그리도 넓어지는지,

게다가 그늘은 어쩌면 그리도 빠르게 나락을 덮어가는지!

 

햇볕은 한 뼘도 아깝고 소중한데, 아쉬워도 나락을 담아서 들여야 할 시간.

나락 널린 공터가 아득하니 이슬 맞히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하리라.

하지만 기력이 쇠하고 빌릴 고양이 손마저 없다.

공터 가득 널어놓은 이 많은 나락을 언제 담으려 하나니….


/몽당연필/